해병대 vs 베트콩, 전략 요충지에 놓인 석탑을 지켜라

입력 2020.05.23 03:00

'탑'
탑|황석영 지음|문학동네|358쪽|1만4500원

"내가 처음 LST로부터 상륙했을 때 모래먼지가 일고 있는 광대한 벌판 위에서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거대한 고철의 산더미였다. 포탑 껍데기와 부서진 중장비들과 레이션의 깡통들이 벌겋게 녹슨 채로 곳곳에 쌓여 있었고, 주위에는 야전 변소의 인분과 식량 찌꺼기를 태우는 기름 연기가 검게 올라가고 있었다."

소설가 황석영(77)의 단편 '탑'의 도입부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작가가 월남전을 겪고 해병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썼다. 전략적 요충지에 놓인 불교 석탑을 놓고 한국 해병대와 베트콩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다. 석탑을 차지한 쪽이 불심(佛心)이 깊은 민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가 계속된 것. 해병대가 악전고투 끝에 석탑을 지키지만, 불교를 무시하는 미군이 진지를 짓기 위해 탑을 허망하게 불도저로 파괴한다. '우리가 싸워 지켜낸 것은 겨우 우리들 자신의 개 같은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는 병사의 자조(自嘲)로 끝난다.

황석영 작가의 중단편 전집(전 5권)이 나왔다. 첫 권 '탑'에는 작가가 1962년 고교생 시절에 발표한 '입석 부근(立石附近)'도 실렸다. 소년기의 4·19 체험을 암벽 등반 이야기로 형상화한 것.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문장에 황석영 문학의 초심과 본질이 들어있다. 이 전집은 지난 2016년 발표된 단편 '만각 스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황석영 소설과 한국 사회가 겹친 궤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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