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시대는 끝, '소통 전도사'가 된 젊은 총수들

입력 2020.05.23 14:00

직원들과 수시로 만나 소통
'번개 저녁모임'에 셀카 촬영도 OK

대기업 총수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그룹 총수들은 젊은 직원들이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대 교체와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선 젊은 총수들은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회사 내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점점 늘면서 이 같은 소통 경영 방식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무실에 앉아 보고를 받고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현장을 찾으면서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 중국 시안에 있는 반도체 공장을 찾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도 차질 없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반도체 생산 기지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3월 초 이 부회장이 코로나가 확산 중이던 구미사업장을 방문했을 때 불안에 떨고 있는 중국 직원들을 위해서도 시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 부회장이 이를 기억하고 이번에 시안 공장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국내 사업장도 부지런히 방문하고 있다. 지난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을 만나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전기차 배터리 개발 방향에 대해 논의한 것을 포함해 올해만 7차례 국내 사업장을 찾았다. 지난 1월2일 새해 들어 처음으로 화성 사업장 내 반도체연구소를 찾았고 2월에도 다시 화성 사업장 찾아 반도체 라인을 살펴봤다. 3월에는 세 차례나 현장을 찾았다. 업계에선 “이제는 이 부회장과 ‘현장 경영’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18일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실적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연 우리 임직원 여러분들이 있다”면서 “양보와 희생을 통해 위기 극복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임직원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에도 지난 1분기 영업손실 566억원으로 당초 시장이 전망한 추정치(2400억원 영업손실)보다 손실 폭을 줄였다.

편지를 본 직원들은 익명게시판에 “편지가 힘이 된다” “조 회장 취임 이후 긍정적 변화가 느껴진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해 아버지인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장례식 직후 출근했을 때도 먼저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 적어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최태원(왼쪽 위에서 두번째) SK그룹 회장이 SK스포츠단 선수, 감독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다./SK
최태원(왼쪽 위에서 두번째) SK그룹 회장이 SK스포츠단 선수, 감독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다./SK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소통 전도사 역할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7일 오후 코로나로 올림픽이 연기되고 리그가 중단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스포츠단 선수들과 화상 통화를 했다. 최 회장은 김온아 SK슈가글라이더즈(핸드볼) 선수, 김동철 SK호크스(핸드볼) 선수, 정조국 제주유나이티드(축구) 선수, 김선형 SK나이츠(농구) 선수, 류민호 SK텔레콤 장애인사이클팀 감독, 하재훈 SK와이번스(야구) 선수 등 6명에게 “스포츠단 선수들 모두 처음 경험해보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다가간다면 오히려 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총수가 소속 스포츠단 선수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지난해에도 SK 임직원들과 100회에 걸쳐 ‘행복토크’를 가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광화문 일대 한식당 두 곳에서 직원들과 ‘번개 저녁모임’을 갖기도 했다. 올해 신년회도 파격적이었다. 보통 총수들이 신년사를 전하는 딱딱한 방식에서 탈피해 소셜 벤처 사업가, 교수, 지역공동체 활동가 등이 나와 발표하는 방식으로 신년회가 열렸다. SK는 이 같은 신년회 형식 변화에 대해 “SK가 지향하는 행복과 ‘딥 체인지’(사업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를 고객, 사회와 함께 만들고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스타그램 캡처

유통업계에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소통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코로나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는 의료진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에 참여한 사진을 올렸다.

또한 한 방송에서는 백종원 더본코리아대표의 전화를 받고 직접 ‘못난이 감자’ ‘못난이 왕고구마’를 구매해 판매하기도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런 게 바로 상생이다” “서로 돕는 기업에는 믿음이 가게 돼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내 '디자인경영센터'를 찾은 구광모 LG그룹 회장/LG
지난 2월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내 '디자인경영센터'를 찾은 구광모 LG그룹 회장/LG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회사 내에선 회장이 아니라 대표로 불린다. 그가 회장 취임 직후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실제 LG그룹에서 나오는 모든 보도자료에는 ‘구광모 ㈜LG 대표’라고 적혀 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호칭부터 바꾼 것이다.

그는 올해 시무식을 없애고 온라인 영상 신년사로 대체하기도 했다. 기존 시무식은 일부 임직원에게만 신년사를 직접 전하는 방식이었는데, 온라인 신년사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 직접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다.

지난해 10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현대차
지난해 10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재동 본사 강당에서 직원 1200여명과 타운홀미팅을 했다. 직원들에게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재계에선 “과거엔 총수들에게 직접 말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리더십이 달라진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자리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직원들과 셀카를 찍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2월에는 본인이 직접 수소전기차 넥쏘를 타고 자율주행을 시연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메시지를 과장 승진자 세미나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갑자기 제가 나와서 조금 놀라셨나요? 이렇게라도 여러분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라고 첫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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