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4조7000억 들어가는 남부내륙철도, 산으로 가나?

조선일보
입력 2020.05.23 03:00 | 수정 2020.05.23 16:39

[아무튼, 주말]

경남 두 도시, 노선 놓고 충돌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후, 고향이 받을 가장 큰 선물 중 하나가 '남부내륙철도'라고 한다. 국비 4조7000억원이 투입될 이 철도 건설을 놓고 경남의 두 대도시, 창원시와 진주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지금도 서울에서 출발해 창원이나 진주로 가는 KTX가 있다. 그러나 동대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남부내륙철도가 깔리면 KTX가 동대구로 가지 않고, 경상북도 김천역에서 곧바로 경상남도 서부 지역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김천역에서 거제시까지 약 172㎞ 길이의 철로를 깔아 KTX가 하루 평균 25대 오가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규모도 크다. 국책 연구 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7년 작성한 기초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선로 가운데 산이나 낮은 언덕 등을 통과하는 터널 구간이 약 112㎞(65%)에 이른다. 또 강이나 각종 도로를 가로지르는 교량(橋梁·다리) 구간도 약 16㎞이다.

이 사업은 1999년 정부의 국가 기간 교통망 계획에 처음 포함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후 지지부진했다. 2017년에는 KDI가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막대한 공사비가 드는데, 그만큼 많은 승객이 타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이 추진된 배경에는 문 대통령과 측근 김경수 경남지사가 있다. 이들은 후보 시절 모두 남부내륙철도 건설을 공약했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이 떨어져도 국가 균형 발전을 이유로 국비를 투입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기초 용역 방안에 따르면 노선은 김천에서 출발해 경남 합천으로 내려와 경남 진주시와 고성군을 거쳐 거제로 간다. 이 안대로라면 서울에서 진주까지 KTX로 걸리는 시간은 종전(동대구 경유 노선) 약 3시간 30분에서 약 2시간 10분으로 크게 줄어든다.

그런데 지난해 말 창원시가 노선을 바꾸자고 나서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진주가 아닌 창원에 가까운 함안군을 통과토록 하자는 게 창원시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서울에서 창원까지는 KTX 약 3시간(동대구 경유)에서 2시간 20~30분가량으로 줄어든다.

창원시는 더 많은 경남 주민이 혜택을 누리도록 철로를 함안으로 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종남 창원시 신교통추진단장은 "최대한 많은 도민이 누릴 수 있도록 수정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창원의 인구(104만명)가 진주(34만)의 3배에 이른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창원시의회와 창원상공회의소도 함안으로 노선을 바꿔달라는 건의문을 정부에 보냈다.

이에 대해 진주시는 "20년 기다린 최대 숙원 사업을 창원시가 가로채려 한다"며 발끈하고 있다. 진주시의 한 관계자는 "창원시의 주장은 일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애초 경제성이 아니라,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추진됐고 이미 다 끝난 얘기인데 뒤늦게 딴죽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시는 재선이나 경남지사직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허성무 창원시장의 욕심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주시 관계자는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경남 전체가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반면 창원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두 도시가 충돌하는 배경에는 경남의 중심을 다투는 자존심 문제도 있다. 진주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경남 제1 도시였다. 1928년까지 경남도청이 있던 곳도 진주였다. 이후 도청을 부산으로 옮겼다가 1983년 창원으로 이전했고, 이후 창원은 몸집을 키우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반면 진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는데, KTX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급 기관인 경상남도는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두 도시 등을 포함한 중재 회의를 열어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요청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4월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국토부가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을 낼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원시는 "진주시가 인근 하동군, 산청군 등과 함께 행정 협의체를 꾸려 창원을 비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정 권한을 가진 국토부는 최종 용역 작업을 진행 중이며, 오는 11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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