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기 상용화 '0'… 코로나 환자 살린 장비도 창고에 처박혀

조선일보
입력 2020.05.22 03:25 | 수정 2020.05.22 13:54

[팬데믹 시대, 역행하는 원격의료] [1] 운만 띄우고 뒤로 빠진 당정청
원격의료기 인증받은 기업들, 정작 제품 쓸 곳은 없는데
3년마다 실사받고 서류평가… 일부 업체, 인증해제 요청
中·日 코로나 이후 원격의료 속도, 한국은 토론회도 못열어

21일 서울대병원 경북 문경생활치료센터 물품보관소 안에는 국내 업체 '트라이벨랩'사의 원격의료용 장비가 조각조각 해체돼 박스에 담겨 있었다. 모니터링창, 혈압계, 심전도 측정을 위한 선 등 각 부품이 뒤엉켜 원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장비는 지난 3월부터 지난달 9일까지 약 한 달간 이 센터에 입소한 코로나 확진 환자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원격진료에 쓰였다. 그러나 지난달 모든 확진자가 퇴원하면서 이 기기는 다시 해체돼 박스에 담겼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다른 시범사업이나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했다.

21일 경북 문경생활치료센터의 텅 빈 치료실 안에 트라이벨랩사의 원격의료용 장비가 생체정보 모니터링창, 혈압계, 심전도 측정을 위한 손집게 선과 가슴 패치 선(왼쪽부터)으로 해체돼 칸칸이 박스에 담겨 있다.
해외주문 몰리는 이 원격의료 장비, 한국선 박스 신세 - 21일 경북 문경생활치료센터의 텅 빈 치료실 안에 트라이벨랩사의 원격의료용 장비가 생체정보 모니터링창, 혈압계, 심전도 측정을 위한 손집게 선과 가슴 패치 선(왼쪽부터)으로 해체돼 칸칸이 박스에 담겨 있다. 이 장비는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이 센터에서 치료받던 코로나 경증 환자를 위한 원격진료에 쓰는 것을 한시적으로 허용받았다. 효과가 입증되면서 해외 수출 러브콜이 몰리고 있지만, 지난달 문경생활치료센터가 문을 닫고 모든 환자가 퇴원하면서 한동안 빛을 볼 수 없게 됐다. /서울대병원 정보화실
코로나 바이러스 2차 유행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코로나 유행으로 효과를 인정받은 장비조차 국내 법규상 본격적인 사용이 어려운 현실이다.

코로나 환자 관리 기기는 창고로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지난 3월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산소포화도, 심전도, 맥박 등 총 8가지 생체 정보를 측정해 병원으로 자동 전송해주는 국내 기업 트라이벨랩사의 웨어러블 원격의료 장비 10대를 사용했다. 서울대병원은 이 기기를 작년에 구입했지만, 국내법이 생체정보 전송은 '원격의료'라며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사용을 하지 못했다.

서울대 문경생활치료센터 원격의료 만족도
/조선일보
이 기기는 코로나 유행으로 빛을 보게 됐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서울에서 이 기기를 통해 경북 문경에 있는 환자 상태를 살폈다. 기기를 착용하고 있으면 일일이 간호사가 전화를 걸거나 환자가 자가진단표를 작성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병원 차트에 정보가 입력됐다. 서울대병원 문경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118명의 확진자 중 30여 명이 이 기기를 착용했다. 효과가 입증되면서 트라이벨랩에는 해외 수출 러브콜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를 낸 웨어러블 장비는 현재 폐쇄된 문경생활치료센터 창고에 쌓여있는 처지다. 김경환 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은 "국내에서는 의사들이 사정사정해서 허가된 임상시험에서만 이런 원격의료용 기기가 시범사업 형태로 쓰이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트라이벨랩 제품은 효과가 입증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추가 원내·원외 임상시험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원격의료 인증 14개 기기 자진 철회

국내에서는 원격의료 규제로 원격의료 기기로 식약처 인증을 받더라도 제조사들이 자진해서 인증을 반납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만들어봐야 상용화가 불가능하고 식약처 인증을 유지하려면 3년마다 실사·서류평가를 받아야 해 인증이 쓸모가 없다"고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21일 기준 국내 웨어러블 원격의료기기 인증인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기기(유헬스케어)로 등록된 제품은 47개다. 작년 5월 기준 원격의료 인증 기기는 51개였고, 이후 10개 기기가 새로 식약처 인증을 받았으니 61개로 늘었어야 한다. 그런데도 되레 수가 14개 줄어들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존에 인증받은 업체들이 14개 제품에 대한 허가 해제를 요청했다"며 "대부분 상용화에 실패해 실제 생산을 않거나, 폐업한 업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어차피 인증을 받아봐야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유헬스케어 인증을 받고도 상용화에 성공한 제품이 현재까지 '0개'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규제하는 현행법 때문이다. 국내법상 이런 웨어러블 장비로 측정한 생체신호를 밖에서 병원으로 전송해 진료나 처방에 쓰는 것은 금지돼 있다. 원격으로 생체정보를 측정해 전송하는 손목시계형 기계를 만드는 한 업체 관계자는 "원격의료기기 인증을 포기하고, 병원 내에서만 쓰도록 일반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 납품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은 원격의료 박차

일본과 중국은 각각 2015년과 2016년 원격의료를 본격 도입했다. 일본은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는 원격의료를 금지해왔지만 이번 코로나 유행 이후 초진 환자도 원격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중국은 코로나 유행 이후 1위 원격의료 업체에서만 11억명이 넘는 환자가 진료를 받았다.

복지부가 지난 2월 24일부터 도입한 한시적 원격진료에 대한 국내 반응도 좋다. 서울대병원이 문경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던 96명의 확진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의 만족도와 편리성 설문을 한 결과 평균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6점, 편리성은 4.57점이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원격의료 정착·확대를 위한 토론회조차 열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달 "5월 중에 의사들과 마주 앉아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끝장토론을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토론회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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