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詩의 시작… 최남선 아닌 김소월 '진달래꽃'이었다

입력 2020.05.22 03:00

평론집 '한국적 서정…'낸 정과리
"김소월이 최초의 근대 시인… 문학계가 그의 시를 오독해온 것"

"한국 문학 교육에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심각한 오독(誤讀) 속에 방치되어 왔다."

'문학은 세상에 대한 풍요로운 질문인데, 우리 문학 교육은 여전히 단답형에 빠져 오독까지 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정과리 연세대 교수.
"문학은 세상에 대한 풍요로운 질문인데, 우리 문학 교육은 여전히 단답형에 빠져 오독까지 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정과리 연세대 교수. /조인원 기자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김소월 새롭게 읽기'를 제안했다. 그는 최근 새 평론집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김소월은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과 단절하는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근대적인 시를 한반도 언어문화의 장(場) 안에서 개발하려고 했다"며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출간된 1925년에 한국적 근대시가 처음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를 근대시의 기점으로 본 통설을 뒤집으면서, 한때 '민요 시인'으로 불린 김소월을 '한국 최초의 근대 시인'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고 시작하는 시 '진달래꽃'의 화자 '나'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헤어지려는 연인에게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애원했다. 동시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다짐했다. '나'는 순종과 인내에 충실한 전통적 한국 여인의 초상으로 풀이되어 왔다.

정과리 교수는 "대부분의 해석이 저 지독한 참음 속에 '미련과 원망'이 있다고 단순하게 봤다"고 비판하면서 새 독법을 내놓았다. 시의 화자 '나'는 이별을 인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인에게 어디 한번 '즈려밟고 가시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내기를 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태도의 표명도 근대적 개인인 '나'의 입장에서 연인과 밀고 당기는 심리전을 전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교수는 "이 시는 '나'와 연인 사이 교묘한 전쟁으로서 대화이자 동시에 그 전쟁에 독자를 참여케 하는 호소의 울림통이라고 할 수 있다"며 "독자는 20세기 벽두에 한 조선의 시인이 개발한 놀라운 근대적 광경에 빨려든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 '진달래꽃'의 근대성을 부각하기 위해 '떠나는 임에 대한 정한(情恨)'을 다룬 전통 시가(詩歌)와 비교했다. 고려속요 '가시리'는 '가시는 듯 도셔오소셔(돌아오소서)'라고 끝난다. 연인이 결국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근거한 표현이기에, '나'와 연인 사이에 '단절'이 없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엔 '단절'이 있다는 것. 정 교수는 "근대성은 '단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며 "그 '단절'이 있어야만 근대적 개인인 '나'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한 아리랑에도 '단절'이 없다. 연인과의 단절을 통해 독립하려는 '나'의 역할이 빠진 채 '즉각적이고 말초적 저주'만 있다. 정 교수는 "이 두 작품과 비교해보면 '진달래꽃'의 화자는 단절을 자신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자 동시에 그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개입시키는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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