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채우는 色, 그것은 사랑

조선일보
입력 2020.05.22 03:00

금산갤러리서 김경희 개인전
"절망에 빠진 날 붙잡아준 그림… 캔버스는 희망이자 환희였다"

스물셋에 결혼해 서른한 살 때 산에서 남편을 잃었다. 처참한 사고였다. 일곱 살·다섯 살 딸 둘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이듬해 떠난 미국 유학에서 유화·수채화를 잡히는 대로 그렸다. 마음의 고독이 캔버스에도 옮아갔다. 딸들이 눈에 밟혀 3년 만에 돌아왔다. 미술계를 떠나 교육행정가로 20여년 일하면서도 붓을 놓은 적은 없었다. 그림은 고독을 이기는 힘이었다. "내 삶은 절망과 분노, 고뇌와 슬픔이었다. 캔버스는 희망과 환희의 공간이었다." 서양화가 김경희(72)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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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씨가 '내 마음의 노래#2'(2018) 앞에 섰다. 화병 속 아네모네의 꽃말은 '속절없는 사랑' 이다. /김지호 기자
김경희는 1988년 조선호텔 지하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 10회, 합동전시회 30여회를 가졌다. 대학에선 건축을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을 낙으로 삼았다. 대학 4학년 때 국전에 입선하기도 했다. 남편이 세상 떠난 후 그를 붙잡아 세운 것도 그림이었다. 2011년부터는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건국대를 설립한 고(故) 유석창 박사의 맏며느리다. 2001년부터 17년간 건국대 이사장을 맡아 "죽을 힘을 다했다"고 했다. 이사장직을 맡자마자 예술대학을 세웠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그림에 대한 갈증만은 여전했다. 시간을 쪼개 1년에 '작품 같은 작품'을 서너 점씩 그렸다. 그림을 모아 2018년 중국 난징대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6월 5일까지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나의 꿈, 나의 사랑'은 국내에선 20년 만이다. 주로 최근 5년 이내 작품들을 선보인다. "꽃이 슬픔을 끌어내어 희망으로 안내한다". 그의 그림마다 화병 속 풍성한 꽃들이 빛난다. 강렬한 붉은색과 보라색 장미를 주로 그린다.

2018년 그린 유화 '내 마음의 노래 #2' 앞에 선 그는 "이 작품이 바로 내 인생"이라고 했다. 색색의 아네모네, 평소 즐기는 클래식 음악, 나체로 얼굴을 감춘 자신의 모습까지 담겼다. "제 마음이 고독하고 처참할 때도 많지만… 어두운 그림도, 괴상한 그림도 저는 안 좋아해요. 꽃은 그냥 보아도 아름답고, 짙은 향기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니까."

또 다른 유화 대작 '축제의 날'은 자유분방하고 환상적인 구도가 마르크 샤갈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진공 상태처럼 자유롭게 떠다닌다.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은 사랑"이라던 샤갈처럼, 그는 "사랑은 생의 원천이고, 나에게 그림은 꿈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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