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명숙이 뭐길래

조선일보
입력 2020.05.22 03:18

여권이 일제히 한명숙 9억원 수수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건설업자의 수표가 한명숙 동생 전세금으로 쓰인 사실이 확인됐다. 그 밖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무죄라고 한다. 여권 사람들도 무리하고 억지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도 한명숙이란 이름만 나오면 '무조건 무죄'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1년 초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빠(한명숙 열렬 지지자)'라고 칭했다.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한 질문에 "차세대 리더십과 민주주의의 방향은 통합이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한명숙만 한 분이 없다"고 했다. 당시까지 정치에 별 뜻이 없던 문 대통령 머릿속에 '한명숙 대통령'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엔 거꾸로 한명숙 등이 문재인을 설득해 대선으로 내보내게 된다. 

[만물상] 한명숙이 뭐길래
▶한명숙이 진보 진영에서 갖는 위상은 간단치 않다. 정통 운동권이자 시민 단체 그룹 대모이며, 친노 핵심에 민주당 적자다. 한명숙은 남편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가 결혼 6개월 만에 통혁당 간첩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13년간 옥바라지를 했다. '운동권 새댁'이 '맹렬 투사'로 변신한 계기라고 한다. 한명숙은 여성 운동을 이끌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총리까지 올랐지만 이후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2년간 복역했다. 진보 진영에선 사회운동→DJ정부 장관→정점(頂點)→검찰 수사라는 이력이 노무현을 닮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 한명숙은 "잔인한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를 빼앗았다"고 추도사를 낭독했다. 민주당 측은 이 추도사 때문에 '정치 보복'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명백한 물적 증거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마치 '한명숙은 돈을 받았어도 무죄'라고 하는 듯하다. 2017년 한명숙 출소 때는 이해찬·문희상·우원식·홍영표·유은혜·전해철·김경수 등 현 정부 핵심 실세들이 총출동해 "한명숙은 용감했다"고 했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과 여당은 모두 한 전 총리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한명숙은 폐족된 친노를 되살리고 정권 탈환과 '친문 세상' 발판을 만든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다들 그 혜택을 누리며 떵떵거리는데 정작 한명숙은 만기를 채우고 사면·복권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미안함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유죄를 무죄로 바꾸자고 한다면 앞으로 선거에 누가 이길 때마다 유죄가 무죄 되고 무죄가 유죄 될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