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자 잡담]가짜뉴스가 이청용의 EPL 진출을 도왔다?

입력 2020.05.24 06:00

이청용(32·울산)이 K리그로 돌아왔으니, 이젠 오랜 세월 묻어뒀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아도 될 듯하다.

연식 있는 축구팬이라면 아마 2009년 1월에 영국 매체 더타임스가 발표한 ‘떠오르는 축구스타 50인’ 명단을 기억할 것이다. 이청용은 여기에 카림 벤제마(33·레알 마드리드·프랑스), 다비드 실바(34·맨시티·스페인)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해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볼튼으로 이적하며 역대 7번째이자 최연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볼튼 시절 이청용./조선DB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볼튼 시절 이청용./조선DB
그런데 이청용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이 문건은, 사실 찌라시나 가짜뉴스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더타임스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선수 관련 언급을 대충 짜깁기하고서 팩트 확인이나 교차검증 없이 무작정 내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명단 중 30번에 있는 마살 부그두브(Masal Bugduv·올림피아 발티)가 그 증거다. 재능 없는 선수를 과대 포장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아예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한 지방지 기자가 장난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플레이어를, 더타임스는 ‘떠오르는 축구스타’라며 명단에 버젓이 포함시킨 것이다.
당시 국내 보도된‘떠오르는 축구스타 50인’명단 중 일부. 더타임스 원문에는 각 선수마다 짤막한 설명도 붙어 있다./네이버 뉴스 캡처
당시 국내 보도된‘떠오르는 축구스타 50인’명단 중 일부. 더타임스 원문에는 각 선수마다 짤막한 설명도 붙어 있다./네이버 뉴스 캡처
◇사건의 전말

이적 시장이 열리는 시기면 어느 때나 대개 그렇듯, 2008년 여름의 축구판 역시 온갖 추측과 뜬소문에 적잖이 부대끼고 있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아일랜드 골웨이 지역지 ‘The Galway Advertiser’ 기자 데클란 발리는 문득 생각했다. 이적 시장이 이렇게나 어지럽고 혼란한 난장판이니, 아예 없는 선수 정보를 가짜로 만들어 유포하더라도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지 않을까.

그는 새로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거짓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다. 몰도바의 16세 축구 신동 ‘마살 부그두브’를 다룬 이야기였다. 소년의 이름은 아일랜드 작가 퍼드릭 오 코네라의 단편소설 ‘M'asal Beag Dubh’(My Little Black Donkey)에서 따왔다. 발리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쓸모없는 당나귀를 애써 포장해 비싸게 팔려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적 시장과 비슷해 보여 골랐다”고 말했다.

발리가 작성한 글에 따르면 부그두브는 15세 나이로 자국 리그 팀인 올림피아 발티(현 자리아 발티)에 데뷔했다. 2008년 5월엔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전해 골까지 넣었다. 그는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웨인 루니(35·더비 카운티·잉글랜드)를 모델 삼아 부그두브의 행동과 플레이 스타일을 묘사했다 한다.
마살 부그두브의 모델이 된 웨인 루니./조선DB
마살 부그두브의 모델이 된 웨인 루니./조선DB
발리는 자신을 런던에 거주하는 아스널 팬이라 소개했다. 위키피디아에 관련 항목을 만들거나 세계 최대 뉴스 통신사인 AP의 기사를 위조해 뿌리는 등의 밑작업도 약간은 병행했다. 그가 출처로 적은 매체 중엔 ‘Diario Mo Thon’이라는 가상의 몰도바 신문도 있었다. 일부 언론이 실제로 이 매체를 인용해 부그두브를 보도했다. 참고로 아일랜드어인 ‘Diario Mo Thon’를 영어로 옮기면 ‘Diary My Ass’가 된다.

치밀한 사기는 아니었다. ‘Diario Mo Thon’ 신문사 홈페이지를 찾아보거나 올림피아 발티에 확인전화 한 통만 걸었어도 간단히 들통났을 농간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간파하지 못했다. 더타임스는 “아스널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빅 클럽에서 이 소년을 주목하고 있다”고 썼다. 글로벌 축구 전문 매체 골닷컴도 이 장난에 걸려들고 말았다. 여러 매체에서 보도가 나가고서야 발리는 블로그에 “부그두브는 존재하지 않는 선수다”고 밝혔다. 더타임스는 정정보도를 했고 골닷컴은 사과문을 올렸다.
/데클란 발리 트위터
/데클란 발리 트위터
물론 이청용이 오로지 이 명단에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EPL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그는 2007년엔 FC서울에서 뛰며 K리그 도움왕에 올랐고, 2009년 들어선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 출전해 J리그 팀인 감바 오사카를 맞아 1도움을 올리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에이전트의 눈에 띌 만한 역량과 실적 자체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더타임스의 이 보도가 이청용의 국제적인 인지도와 평판을 끌어올리는 데 보탬이 됐던 것도 이래저래 사실은 사실이다. 의도한 바도 바라던 바도 아니었지만, 가짜뉴스 도움을 조금이나마 받긴 한 셈이다.

발리는 훗날 “뜬소문이 어디까지 퍼지는지 보고 싶어 벌인 일종의 사회실험이다”며 “악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퍼지기는 참으로 멀리도 퍼져서, 아직도 한국 웹에선 ‘Masal Bugduv’나 ‘마살 부그두브’를 검색하면 관련 글이 종종 나온다. 그 중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딱히 없어 보인다.
피파 온라인 스쿼드를 짜기 위해 마살 부그두브를 찾아다녔을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다./네이버 캡처
피파 온라인 스쿼드를 짜기 위해 마살 부그두브를 찾아다녔을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다./네이버 캡처
◇일본 최초의 NHL 선수?

요즘엔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예전엔 실제로 이 ‘부그두브 사건’처럼 엉성한 장난질 한 방에 특정 종목 시장 전체가 말려들고 속아 넘어가는 일이 이따금 있었다. 스포츠계의 정보망 구축이나 교차검증 시스템이 꽤 부실했던 탓이다. 1974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아마추어 드래프트 때 버펄로 세이버스가 벌인 ‘츠지모토 타로 사건’도 비슷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시절 NHL은 드래프트 과정이 매우 번거로웠다. 경쟁 리그인 ‘월드 하키 협회’(World Hockey Association·1971~1979년 시기에 존재)에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화 통화로만 선수 선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의도 자체야 좋았다지만 모두가 그 필요성을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버펄로 단장이던 조지 펀치 임라치는 지루하고 귀찮은 절차를 강요하는 NHL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항의하는 뜻을 담아 클라렌스 캠벨 NHL 회장을 농락하는 장난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임라치는 1974년 5월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일본 국적 선수인 ‘츠지모토 타로(Tsujimoto Taro)’를 11라운드 183순위로 전격 선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NHL은 미국과 캐나다 이외 지역에서 선수를 뽑는 경우가 드물었다. 동양권은 더욱이나 논외였다. 현 시점까지 통틀어도 NHL 드래프트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본인은 츠지모토와 미우라 히로유키(47), 후쿠후지 유타카(38)까지 단 세 명뿐이다. 게다가 츠지모토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90년대 이후에 뽑힌 선수들이다.
1992년 피츠버그 소속으로 NHL 챔피언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리는 백지선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 한국계 캐나다인인 그는 1991년 피츠버그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로 NHL에 진출했다. 1990년 이전까진 동양인의 NHL 진출이 굉장히 희귀했고, 실제 사례도 없다시피했다./hockeygods
1992년 피츠버그 소속으로 NHL 챔피언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리는 백지선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 한국계 캐나다인인 그는 1991년 피츠버그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로 NHL에 진출했다. 1990년 이전까진 동양인의 NHL 진출이 굉장히 희귀했고, 실제 사례도 없다시피했다./hockeygods
NHL은 당연히 이 파격적인 드래프트 픽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임라치는 “츠지모토는 일본 도쿄 카타나스 팀의 스타 센터 포워드다”는 답변 외엔 자세한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NHL가 내린 지침인 ‘보안 철저 유지’를 준수한다는 이유였다. 말을 받아칠 명분이 딱히 없었던 NHL은, 결국 츠지모토의 리그 등록을 승인했다. 주요 미디어는 NHL의 보도자료를 받아 ‘북미 하키에 일본인 최초로 입성’을 기사로 만들어 내보냈다.
/유튜브 채널 'Trevs Hockey Show' 캡처
/유튜브 채널 'Trevs Hockey Show' 캡처
그러나 몇 주 뒤 임라치는 공개 석상에서 “츠지모토 타로라는 선수는 없다”고 폭로해 버렸다. 그는 “츠지모토의 성씨는 아시아 식당을 운영하던 일본계 미국인인 조슈아 츠지모토씨에게 양해를 구하며 빌렸고, 이름은 조슈아 씨에게 ‘일본에서 인기 있는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서 지었다”고 설명했다. 임라치가 츠지모토의 팀으로 언급한 ‘도쿄 카타나스’ 역시 꾸며낸 조직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버펄로 세이버스에서 외날도를 뜻하는 ‘세이버’(Sabres)를 일본어인 ‘카타나’(Katana·かたな)로 바꾼 것이었다.

임라치가 털어놓을 때까지, NHL은 츠지모토가 가상의 선수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버펄로가 츠지모토를 훈련 캠프 명단에 넣어 NHL에 제출하고 그가 앉을 좌석도 마련해 두는 등 연막을 상당히 진하게 쳤기 때문이다. NHL은 그들이 제작한 온갖 출판물에서 츠지모토 타로의 이름을 일일이 파내야만 했다. 물론 절차가 꽤 번거로웠고 비용도 적잖이 들었다.

정작 버펄로는 구단 공식 미디어 가이드에 츠지모토 타로의 이름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구단이 리그에 한 방을 제대로 꽂아넣은 것이 어지간히도 상쾌했던 듯하다. 버펄로 팬들은 한참이나 경기 때마다 츠지모토 타로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일부는 그의 등번호인 ‘74’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 한다.
츠지모토 타로 유니폼을 입은 버펄로 팬들./The Beffalo News
츠지모토 타로 유니폼을 입은 버펄로 팬들./The Beffalo News
◇티베트에서 온 파이어볼러

일개 기자 차원을 넘어, 언론사가 나서서 장난을 친답시고 가짜뉴스를 뿌려댄 케이스도 있다.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1985년 4월 1일자 잡지에 티베트에서 온 투수 시드 핀치(Sidd Finch)가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있는 뉴욕 메츠 캠프에서 훈련 중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핀치는 시속 168마일(약 270㎞)로 공을 던지면서도 제구가 됐다 한다. 참고로 당대의 최고 구속 기록은 시속 103마일(약 165.7㎞)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도 최고 기록은 아롤디스 채프먼(32·뉴욕 양키스·쿠바)이 신시내티 시절이던 2010년 기록한 105.1마일(약 169㎞)에 머물러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실은 시드 핀치 삽화. 어차피 가짜로 만든 파이어볼러라면, 좌완으로 그리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조선DB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실은 시드 핀치 삽화. 어차피 가짜로 만든 파이어볼러라면, 좌완으로 그리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조선DB
기사에선 핀치가 영국 보육원 출신이며, 고고학자 프랜시스 화이트 핀치에게 입양돼 자랐다 소개했다. 그의 이름 ‘시드’는 석가모니를 뜻하는 ‘싯다르타(Siddhartta)’를 줄인 말이다. 그는 티베트에 가기 전 하버드대에 잠깐 들러 위대한 시인 라마 밀라파스파의 가르침을 익히고, 정신과 신체를 아우르는 요가 철학인 ‘시디’를 마스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이는 다 거짓말이다. 그저 만우절을 맞아 당시 서구세계를 휩쓸던 ‘동양의 신비’를 활용해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만우절이 일주일 지난 뒤인 8일에도 “핀치가 제구력을 상실해 커리어를 지속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할 거라 보도하는 기행을 벌였다. 이들은 15일에야 기사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그 보름 동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핀치에 관해 묻는 편지를 약 2000통가량 받았다 한다.

사실 이들은 기사 부제(副題)에 만우절 장난이라는 암시를 넣었다. 부제는 ‘He's a pitcher, part yogi and part recluse. Impressively liberated from our opulent life-style, Sidd's deciding about yoga—and his future in baseball’로, yoga까지의 첫 글자만 따서 이으면 ‘H-a-p-p-y A-p-r-i-l F-o-o-l-s D-a-y.’가 된다. 물론 적어두는 것과 알아먹는 것은 엄연히 별개 문제이긴 했다.

별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설령 핀치가 실존했더라도 실제 경기에 내보내긴 아무래도 힘들었을 듯하다. 시속 150㎞로 날아가는 야구공만 해도 그 충격량이 1m 높이에서 떨어지는 28㎏짜리 돌덩이와 비슷하다. 그런 판에 구속이 무려 시속 270㎞를 오간다면, 보호구를 방탄복으로 갈아치우건 낭심보호대를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 차건 포수와 심판의 안전을 보장할 도리가 없다. 컨디션 난조라도 오면 마운드에 서는 순간 냉혹한 과부제조기가 될 위험이 크다. 공 위력을 생각하면 야구를 시키느니 차라리 서베를린 초소에 직사화기 대신으로 투입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외팔의 축구선수

스포츠 팬들이 실없이 주고받던 농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때도 있다. 아마도 2008년 대한민국 인터넷상의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네나드 스렉코비치’ 정도가 그 사례로 적절할 것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쭉 읽어오는 동안, 스렉코비치는 왜 언급이 없나 하고 생각했던 독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에펨코리아
이 글을 여기까지 쭉 읽어오는 동안, 스렉코비치는 왜 언급이 없나 하고 생각했던 독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에펨코리아
사건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스포츠 게임 갤러리에서 시작됐다. 한 유저가 팔 끝이 보이지 않는 선수 사진을 올리고서 ‘세르비아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네나드 스렉코비치라는 외팔이 선수가 있다’고 적은 것이다. 사실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 우디네세에서 뛰던 두샨 바스타(36·세르비아)라는 선수로, 어느 쪽 팔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저 사진이 오묘하게 찍히는 바람에 손 일부가 가려졌을 뿐이었다.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과 볼 경합을 하는 두샨 바스타./에펨코리아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과 볼 경합을 하는 두샨 바스타./에펨코리아
그러나 한 번 퍼진 거짓 정보는 도통 수그러들질 않았다. 오히려 사람 입을 여럿 탈수록 소문엔 살이 더 붙었다. EPL 애스턴 빌라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으려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등장했고, 그가 세르비아 명문대인 베오그라드대에서 의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한다는 풍문도 불쑥 나왔다.

이처럼 스렉코비치의 일대기는 헛소문인 주제에 상당한 구체성을 띠어 갔고, 급기야는 한 축구해설자가 본인의 자서전에 이를 인용하는 사고까지 터지고 말았다. 참고로 그 축구해설가는 뒤늦게나마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긴 했다. 다만 아직도 악몽을 꿀 때면 스렉코비치의 얼굴이 보인다 한다.

여담으로 이름이 정말 네나드 스렉코비치인 세르비아 출신 선수도 있긴 있다. 1988년생인 그는 현재 그리스 3부 리그 팀인 아스프로피르고스에서 레프트 윙으로 뛰고 있다. 그 역시 두 팔 모두가 불편함이 없다.
진짜 네나드 스렉코비치./위키피디아
진짜 네나드 스렉코비치./위키피디아
◇Henry O'Hammer

물론 괴소문이 스포츠계를 유린하는 상황을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까진 없다. 세간을 떠도는 헛소리나 가짜뉴스 하나하나가 모두 스포츠판과 이적 시장을 교란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 불거진 낭설 대부분은 루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프로야구 롯데의 전설 ‘헨리 오 함마’도 그러한 계통의 이야기 중 하나다. 소문에 따르면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인 그는 1984년 롯데에 입단했고, 투수와 지명타자를 오가며 2005년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 함마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세이브,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3홈런 9타점, 1995년 플레이오프에서 8타점,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2승 1세이브, 200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결승 2루타를 기록했다.

사실 이는 프로야구 팬덤의 세계에 갓 입문한 사람들을 놀리고자 만든, 롯데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다. 하지만 속이려 드는 사람만 많았지 정작 속는 사람은 초짜 중에도 거의 없었다 한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들이 조금 특이했을 뿐, 스포츠판을 덮친 루머 대부분은 이처럼 누구 하나 제대로 구슬리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다만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헨리 오 함마의 전설만큼은 그 실체가 이미 낱낱이 밝혀졌음에도, 조금은 특이한 형태로 아직도 롯데 팬 곁에 머물러 있다.

뉴비를 정교하게 놀려보겠답시고 헨리 오 함마의 인생 역정을 윤색하던 롯데 팬들은, 언젠가부터 그 스토리에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선수의 모습을 모조리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팬심을 한껏 담아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선수로 재창조해 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 결과 헨리 오 함마는 롯데 팬의 소망과 염원이 뭉친 사념체(思念體) 비스무리한 것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팬들로부터 현실 선수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됐다. 실제로 롯데 팬 중 일부는 헨리 오 함마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간직하고 있다. 롯데 경기가 열리는 날엔 그것을 몸에 걸치고 온 팬도 구장 주변에서 이따금 볼 수 있다 한다.
헨리 오 함마 유니폼을 입은 시민. 만화가 샤다라빠(김근석)이라는 설이 있다./디시인사이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헨리 오 함마 유니폼을 입은 시민. 만화가 샤다라빠(김근석)이라는 설이 있다./디시인사이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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