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9조 투자… 파운드리 전쟁의 서막

조선일보
입력 2020.05.22 03: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는 21일 최첨단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8조~9조원을 들여 경기도 평택캠퍼스에 새로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 라인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의 일환이다. 이달부터 공사에 착수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투자 규모를 8조~9조원으로 추산한다. 파운드리란 퀄컴, 애플 등이 반도체를 설계해 맡기면, 설계도에 따라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것을 뜻한다. 대만 TSMC가 시장 점유율 54.1%로 1위이고, 삼성전자는 15.9%로 2위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경기도 화성에 이어 두 번째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라인을 구축해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로 인해 파운드리 시장 경쟁이 더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본다. 최근 세계 파운드리 1위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2029년까지 120억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5나노 공정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시스템 반도체 1위인 인텔도 최근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을 확대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하며 시장 공략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7번째 파운드리 라인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생산 라인은 경기도 기흥(2개)과 화성(3개), 미국 오스틴 등 6개가 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평택캠퍼스에 구축하는 파운드리는 삼성의 7번째 파운드리 라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에 짓고 있는 2공장 전부를 EUV를 활용한 D램 메모리 생산에 쓰려고 했으나 일부를 파운드리로 돌리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 모습.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 모습. 이곳에는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과 함께 EUV(극자외선) 공정을 활용한 파운드리 라인이 들어설 예정이다.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평택 파운드리 라인에 투자할 것으로 보이는 8조~9조원은 화성에 있는 파운드리 라인 초기 구축 비용(7조원)보다 많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파운드리 라인에서 5나노 이하 제품을 주력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경기도 화성에서 업계 최초로 EUV 공정으로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전략적 투자와 지속적인 인력 채용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의 탄탄한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파운드리 전쟁의 서막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규모 외
이번 삼성의 파운드리 투자 발표는 미묘한 시점에 나왔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TSMC를 비롯해 인텔과 삼성에 미국 공장 확장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삼성이 한국에 신규 라인 구축을 발표한 것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시안에 있는 삼성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다녀온 지 이틀 만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발표가 자칫 미국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한 모양새로 비칠까 봐 경계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라인 신규 투자가 '파운드리 전쟁의 신호탄'일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세계 테크 패권을 놓고 강대국이 다투는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반도체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반도체 자국 중심주의를 외치며 파운드리 업체들을 자국 영향력 아래에 놓으려 한다.

TSMC는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고, 인텔도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 진출할 예정이다. 중국의 SMIC도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몸집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TSMC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올 하반기 EUV 공정을 통해 5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하고, 2022년에는 기존 구조와는 다른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와 이를 한층 발전시킨 '멀티 브리지 채널(MBCFET)' 기술을 3나노 공정에 적용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애플·퀄컴 등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를 붙잡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황철성 서울대 교수는 "삼성이 TSMC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파운드리 고객사들이 느끼는 '기술 유출 불안감'을 씻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운드리(Foundry)

퀄컴·애플 등 반도체의 설계 디자인만 하는 회사(팹리스·Fabless)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설계대로 반도체를 생산해주는 방식. 반도체 위탁 생산으로도 불린다.

☞EUV(극자외선·Extreme Ultra Violet) 공정

파장의 길이가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기존 광원(光源)인 불화아르곤(ArF)보다 매우 짧아 세밀한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데 적합한 방식. 반도체 회로를 세밀하게 그리면 반도체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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