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정부·여당, 화려한 “뒤집기 쇼”

입력 2020.05.21 18:00


오늘은 후라이팬 뒤집는 영상을 먼저 보여드린다. 자, 어떠십니까. 솜씨 좋은 셰프가 중국요리 웍이나 혹은 후라이팬을 잡은 손목을 재바르게 놀리면 안에 담긴 음식물이 공중제비돌기를 하고 난 뒤 정확하게 180도 뒤집힌 다음 떨어진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저 사람들도 생각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 보통은 이렇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다. ‘합리적인 국민’의 가장 큰 맹점은 ‘정권도 합리적일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총선을 압승한 문재인 정부는 거침없이 뒤집을 것이다. 이미 전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진 사안, 그리고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사건, 피고인이 이미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사건까지 뒤집으려 할 것이다.

먼저 ‘한명숙 사건’이 있다. 이미 10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5년 전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 판결한 사건이고, 3년 전 피고인 한명숙 전 총리가 징역 2년을 살고 만기 출소한 사건이다. 여기서 한명숙 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린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금의환향하는 장면 같다.

한명숙씨는 10년 전인 2010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5년을 끌었던 재판은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징역 2년, 추징금 8억8000만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어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 강압수사와 사법 농단 피해자임을 가리키고 있다. 2년 간 옥고를 치렀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데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자 추미애 법무장관은 이렇게 ‘화답’했다. "깊이 문제를 느낀다. 이런 차원에서 반드시 검찰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여당 쪽 사람들은 최근 일부 매체가 보도한 이른바 한만호씨 비망록이란 것을 들고 나왔다. ‘한명숙씨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은 검찰의 회유에 따른 거짓이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비망록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재판 과정에서 전부 공개됐던 문건이고, ‘검사의 회유 협박’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대법원 최종 판결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재심’이라는 절차가 있다. 한명숙 씨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집권당과 법무장관이 나서는 것은 재심보다는 대통령의 사면복권 쪽으로 여론을 모아보려는 시도인 것 같다. 아니면 당시 ‘한명숙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에게 강압 수사 혐의를 씌워 공수처로 넘길 수 있다는 협박일지 모른다.

저 사람들에게 ‘한명숙 사건’보다 더 급한 것은 ‘윤미향 사건’이다. 이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21대 국회 출범을 코앞에 두고 정권에게 치명적인 도덕적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정대협·정의연 회계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윤미향 당선자, 그리고 대구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만남을 극적으로 연출함으로써 뒤집기를 하려고 했다. ‘할머니 앞에 무릎 꿇은 윤미향, 그녀를 껴안아 준 이용수 할머니, 마침내 서로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할머니는 윤미향을 용서했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였다. 지금 보여드리는, 이렇게 껴안은 사진이 맨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이 뒤집기는 일단 실패했다. 왜냐하면 이용수 할머니가 곧바로 "용서한 것 없다." "법에서 심판할 것이다."고 못을 박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뒤집기’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은 어제 사건이 불거진 지 13일 만에 첫 공식 입장을 내놓았는데,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것이다. ‘사실관계 먼저’ ‘회계 감사 먼저’ ‘선(先) 조사 후(後) 결정’ 이런 전략이다. ‘조기 매듭’으로 덮고 가려는 속셈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했던 것을 바로 이튿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심각하게 검토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한 것도 뒤집기다. 사실은 지금 민주당에서 이낙연 전 총리의 말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 뿐이라는 점에서 이해찬 대표가 청와대의 뜻을 대신 발표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윤미향 사건’도 내부 폭로자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본인,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족이 아니었다면 집권세력은 이런 의혹을 벌써 열두 번은 뒤집고도 남았을 것이다. 외부 폭로자를 무고 혐의로 수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십 억 대 ‘회계 비리 의혹’이 ‘배임·횡령 착복 혐의’로 비화되는 것을 막고, 이것을 ‘입력 과정 오류’ ‘단순 회계 실수’로 뒤집었을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어제 정대협과 정의연을 압수수색한 검찰에 보내는 무언의 훈령일 수도 있다. ‘수사는 시늉만 해라, 5월30일 이후엔 윤미향은 당선자가 아닌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이 생긴다,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라’, 이런 무언의 압박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의 딸인 목회자 이민주씨에게도 "여당에서 찾아와 조용히 있으라 했다"지 않은가.

이 와중에 어제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정부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취했던 5·24 조치에 대해 "사실상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고 밝혔다. 이것은 여권 인사의 주장이 아니라 통일부 대변인의 공식 입장 표명이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사과는 하기는커녕 그 책임자가 승진하고 남측을 비웃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의 ‘실효성 상실’ 발언이 나왔다. ‘실효성 상실’이라고 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실효성 해제’ 그리고 ‘사실상 폐기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저들은 셰프가 후라이팬 뒤집듯 국민들의 상식과 합리를 뒤집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180석 거대 여당의 힘을 등에 업고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일’을 벌일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삼인성호, 그런 일’을 벌일 것이다. 윤미향 무혐의 시도, 한명숙 무죄 시도, 5·24제재 사실상 폐기 선언, 모두 청와대가 사령탑이 되어 지시를 내리고 있는 ‘뒤집기 쇼’라고 봐야 한다. ‘김정은 답방, 시진핑 방한’이라는 빅쇼를 준비하는 사전 리허설쯤으로 여길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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