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기 기자의 신사의 품격] 푸른색 버튼다운 셔츠로 그는 트럼프에 반대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5.19 03:00

美 코로나 사령탑 파우치 박사

채민기 기자
스티브 잡스 하면 그가 유니폼처럼 입었던 검은 터틀넥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같은 디자인의 옷을 계속 입다 보면 사람과 옷의 이미지가 서로 녹아들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 옷차림으로 이런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미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 앤서니 파우치(79) 박사다. 미국의 코로나 방역 사령탑인 파우치 박사는 항상 슈트 안에 푸른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매스컴에 등장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의 화상 대담 때도, 자가 격리 중 화상으로 미 의회 증언에 나섰을 때도 이 셔츠를 입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프로필 사진도 하얀 의사 가운에 푸른 버튼다운 셔츠 차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선 앤서니 파우치(오른쪽). 단추로 고정한 셔츠 깃이 트럼프와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선 앤서니 파우치(오른쪽). 단추로 고정한 셔츠 깃이 트럼프와 대조적이다. /AFP 연합뉴스

버튼다운 셔츠는 폴로 경기에서 승마 중에도 깃이 나풀거리지 않도록 단추로 몸판에 고정하던 데서 유래했다. 20세기 초반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 사립대) 학생들이 즐겨 입으면서 그들의 패션을 바탕으로 하는 프레피룩(preppy look)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생처럼 자유분방한 느낌이 있어서 격식을 엄격하게 차리는 슈트에는 잘 입지 않는다. 그렇기에 파우치 박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보통의 드레스셔츠를 입는 남자들 무리에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었다.

파우치 박사는 거침이 없다. 바로 옆에 대통령이 서 있어도 정반대 견해를 당당하게 밝힌다. 그가 대통령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일체의 정치적 고려와 거리를 둔 전문가라는 사실을 셔츠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파우치 박사의 푸른 버튼다운 셔츠가 '금욕적 프로 정신'을 돋보이게 한다고 분석했다.

정통 버튼다운 셔츠는 옥스퍼드(굵은 실로 짠 면직물) 천으로 만든다. 살짝 까슬까슬한 느낌이 있어서 광택이 반지르르한 슈트보다는 트위드나 플란넬처럼 탄탄하고 거친 소재의 재킷과 잘 어울린다. 넥타이를 매야 한다면 니트 소재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칼라 끝의 단추를 풀고 입으면 무심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난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 회장이자 전설적 패션 아이콘이었던 조반니 아넬리(1921~2003)가 자주 입었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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