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분기점은 57세… 8년전 47세에서 열살 늦춰졌다

입력 2020.05.08 01:30

[홍영림의 뉴스 저격]

2012년~2020년 8년새 바뀐 유권자 연령대별 정치 성향

2002년 노무현 지지 청년층, 2020년 총선 여당 압승 주도
50대인 86세대 나이 들어도 보수화로 기울어지지 않아 '진보 다수 시대'가 열린 셈
세대별 투표 고정적이지 않지만 보수당, 진보세대 맞춤전략 필요

지난 4·15 총선 투표율은 66.2%로 2000년대 들어 치른 총선 중 최고치였다. 선거 직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의향이 보수층(84%)과 진보층(83%)이 비슷하게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양쪽 진영 유권자가 총결집한 선거였다. 그래도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미래통합당의 리더십 부재와 공천 실패 등뿐만이 아니다. 예전엔 보수 유권자 대열에 속했던 50대가 진보 쪽으로 쏠리면서 '2050세대 대(對) 6070세대'로 지형(地形)이 달라진 영향이 컸다. 선거에서 보수층과 진보층이 서로 뭉칠 경우, 보수 정당이 보수 표(票)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20대 때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50대가 여전히 진보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특정 시기에 한 세대가 공유한 태도가 지속된다"는 '세대 효과'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보수화한다"는 '연령 효과'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50대는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도 진보 성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래통합당이든 보수의 계보를 잇는 어떤 정당이든 거대한 벽에 가로막힐 수 있다"고 했다.

◇"나이 들어도 보수화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초기엔 인구 고령화와 장·노년층 보수화가 맞물리며 각종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갤럽이 올해 1~4월에 매주 전국 성인 1000명씩 총 1만6000명의 '정치 성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8세부터 56세까지는 '진보'란 응답이 더 높았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답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나이는 57세(1963년생)였다. 중도층을 제외하고 보수층과 진보층으로만 계산한 정치 성향 비율을 5세 단위로 보면 50대 전반(50~54세)에선 39% 대 61%로 진보가 크게 우세했고, 50대 후반(55~59세)은 51% 대 49%로 보수가 다소 앞섰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가량인 20대부터 50대 전반까지 진보가 우세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4·15 총선이 치러진 셈이다.

2012, 2020년 유권자 연령대별 정치 성향 그래프
/그래픽=양인성

각 연령별로 정치 성향을 조사한 과거 자료와 현재를 비교하면 50대의 탈(脫)보수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8년 전인 2012년에 갤럽이 매주 전국 성인 1500명가량씩 7만3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보수가 진보를 추월하기 시작한 나이는 당시 47세(1965년생)였다. 보수가 진보를 앞서는 분기점이 2012년엔 47세였지만, 2020년엔 57세로 바뀐 것이다. 즉 지금의 50대 초·중반 유권자들은 세월이 흘러도 보수화하지 않고, 8년 전 40대 때 지니고 있었던 진보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덕현 한국갤럽 연구위원은 "선거에서 6070세대의 투표율이 아무리 높아도 규모가 훨씬 큰 2050세대와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세대별 이념 지형으로 보면 '진보 다수파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盧 찍은 청년층, 올해 총선 與압승 주도

역대 선거에서 세대 간 투표 성향이 본격적으로 갈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선이었다. 당시 지상파 방송 출구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이회창 후보 득표율은 20대(62% 대 32%)와 30대(59% 대 34%) 에선 노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중간 지대에 있던 40대는 두 후보가 48%로 동률이었고, 50대(40% 대 58%)와 60대 이상(35% 대 64%)에선 이 후보가 앞섰다. 결국 유권자의 절반가량이던 2030세대에서 압승을 거둔 노 후보가 전체적으로 2.3%포인트 앞서며 57만표 차이로 승리했다.

2002년 대선 때 노 후보를 밀었던 2030세대는 3040세대로 바뀐 10년 후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응원군이었다. 문재인·박근혜 후보 득표율이 30대(67% 대 33%), 40대(56% 대 44%)에선 문 후보 쪽으로 쏠렸다. 20대(66% 대 34%)도 문 후보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50대는 박 후보(63%)가 문 후보(37%)를 압도했고, 60대 이상(28% 대 72%)도 박 후보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당시 박 후보가 3.6%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데는 5060세대 투표율이 80% 이상을 기록한 영향이 컸다.

2002년과 2012년 대선에서 노무현·문재인 후보를 계속 지지했던 지금의 4050세대는 2020년 총선에서도 진보 여당의 승리에 기여했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 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후보 득표율 합은 40대(64% 대 27%), 50대(49% 대 42%) 등에서 민주당이 우세했다. 8년 전 20대 때 문 후보를 밀었던 30대(61% 대 30%)도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에 쏠렸고, 20대(56% 대 32%)도 민주당 지지가 더 높았다. 다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 탄생에 기여한 60대 이상(33% 대 60%)에서만 통합당 지지가 더 높았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역대 선거 자료를 추적해보면 현재의 40대와 50대의 성향이 장기간 유지되고 있는 게 확인된다"며 "이들이 앞으로 노년층이 되더라도 보수로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치 운동장이 진보 쪽으로 더 기울어질 수 있다"고 했다.

◇야당은 유권자 지형 변화 읽어야

최근엔 3040세대의 견고한 진보 성향도 주목받고 있다.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위 세대와 달리 IMF 이후 사회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한 채 불안·불만·불신이 강한 '3불(不) 세대'다. 3040세대와 50대의 투표 연대로 유권자 지형이 진보 쪽으로 기울어진 결과, 보수 표는 2012년 대선 때 51.6%(박근혜 후보 득표율)에서 2020년 총선은 41.4%(미래통합당 득표율)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보수 야당은 유권자 지형 변화를 읽는 능력이 부족했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란 착각 속에 빠져있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진보 성향의 세대를 포용하기 위해 보수 정치권은 변화가 필요하다"며 "과거 잘못에 대해 참회한 뒤 당의 중심을 젊은 세대로 바꾸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온정적 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리서치 총선 사후 조사에서도 전 정부의 탄핵과 관련해 전체 투표자의 81%가 당시 집권 여당이 '책임진 것이 없다'고 했다. 메트릭스리서치 총선 사후 조사에선 다수(74%)가 '통합당이 변하기 위해 3040세대로 당의 중심을 바꿔야 한다'며 세대교체 필요성을 지적했다.

2007년 대선에서 2030세대가 이명박 후보에게 쏠렸던 것처럼 세대별 투표 행태가 항상 고정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보수 야당은 비호감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계속 실패할 것"이라면서도 "진보 정치권도 급변하는 국제·경제 환경에 맞는 합리적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이번에 표를 몰아준 중도·진보층이 외면할 수 있다"고 했다.

[조국 사태 분노한 20대도 통합당은 외면]

비호감, 남성 77%·여성 86%… 북한 김정은 비호감도는 91%

지난해 '조국 사태'와 관련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가장 컸던 세대는 20대였다.

4·15 총선 직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정부의 조국 전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잘못했다'가 20대에서 62%에 달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총선에서 20대는 지역구 후보로 더불어민주당(56%)을 선택한 비율이 미래통합당(32%)에 비해 훨씬 높았다. 20대는 성별로 민주당과 통합당 득표율이 남성은 48% 대 41%, 여성은 64% 대 25%였다. 20대 남성은 '이남자' 현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작년부터 여성보다 정부 지지층에서 이탈이 심했지만, 총선에선 민주당을 더 많이 찍었다.

이에 대해선 20대 남녀 모두 통합당을 매우 비호감 정당으로 인식하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메트릭스리서치 총선 사후 조사에서 통합당에 대한 비호감은 전체 성·연령층 중 20대 여성이 86%로 가장 높았고, 20대 남성도 7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20대는 수권 정당으로서 통합당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컸다. 한국리서치 총선 사후 조사에서 20대는 통합당의 국정 역량에 대해 '무능하다'(53%)가 '유능하다'(21%)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래도 20대는 현 정부가 공을 들이는 북한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작년 말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비호감이 91%로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 최고치였다. 20대는 정부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탈원전에 대해서도 '기조를 바꿔야 한다'가 66%로 가장 높았다. 정부·여당의 주요 정책들이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20대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20대는 보수 야당이 본인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며 "총선 사전 조사에 따르면 20대 중에서 중도·무당파는 투표에 대거 불참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앞으로 이들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정치 지형을 흔들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