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통일의 파트너'

입력 2020.05.06 03:16

北의 적반하장 대응, 東獨 호네커서 실마리 찾아야
'독 묻은 사과' 같은 교류 확대… 김정은 응하지 않을 것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북한은 이번에 더 화끈했다. 지난해 판문점 선언 1주년 때는 공동 기념행사를 갖자는 우리 측 제안에 "자중하라"고 나무라기만 했다. 그런데 선언 2주년을 맞은 올해엔 남쪽을 향해 총질을 했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간 철도 연결과 실향민 상호 방문, 이산가족 상봉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였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러브콜을 보낼 때마다 무시·욕설·조롱으로 응수하고 미사일을 쏘아 댔다. 자꾸 반복되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든다. '저런 제안들, 북한 김정은의 의중은 알아보고 하는 걸까.'

북이 뭐라 하든 이 정부의 대북 퍼주기 행보엔 흔들림이 없다. 그 근거로 서독의 동방 정책 성공을 든다. 1969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동방 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란 기치 아래 동독에 철도·도로·운하를 건설해 주고 막대한 현금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동독 정부 빚보증까지 섰다. 그래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 정부가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동독 최고 지도자 호네커가 퍼주는 브란트를 몹시 증오했다는 사실이다. 서독의 돈이 필요했던 호네커는 동독 주민의 인권 개선과 상호 교류라는 브란트의 상호주의 원칙을 수용했다. 서독의 동방 정책이 체제를 허무는 독 묻은 사과임을 간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결과, 동·서독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놓였고, 많을 땐 한 해 700만명의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했다.

동방 정책의 맛을 본 동독인들은 호네커를 혐오하고 브란트에 열광했다. 독일 분단 시절 베를린 주재 외교관이었던 윌리엄 스마이저 전 조지타운대 교수는 저서 '얄타에서 베를린까지'에서 호네커가 이런 이유로 브란트를 싫어했으며, 동독 스파이를 브란트의 비서로 심었다가 들통나게 함으로써 그를 총리직에서 몰아낸 게 확실하다고 증언했다.

우리도 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실향민끼리 상호 방문하고, 봄이면 남으로 꽃 구경 오는 북쪽 동포들에게 한 아름 선물을 안겨 돌려보내고 싶다. 하지만 동독 해체의 역사를 잘 아는 김정은이 여기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 싱크탱크 스트랫포 CEO를 지낸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 서문에서 남북 관계가 교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이유를 이렇게 적시했다. '한국과의 화해가 북한에 아무리 솔깃한 선택지라 해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 한국과의 화해는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지만 바로 그 이익이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통일의 파트너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북한은 그의 상상 속에만 있을 뿐, 현실에는 없다. 반면 북한은 냉철하다. 자기들보다 수십배 잘 살고 세계 최강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대한민국에 맞서 김씨 왕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국가 전략이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는 태영호·지성호씨가 김정은의 생사를 못 맞혔다고 질타만 할 게 아니라 북한 체제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자신들의 맹목부터 걷어내야 한다.

미국을 남북 화해의 훼방꾼으로 보는 시각도 버려야 한다. 브란트는 동방 정책의 세부 사항까지 미국과 사전 조율해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공조는 미국과 서독이 같은 민주적 지향을 지닌 가치 동맹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란트에 이어 총리가 된 헬무트 슈미트가 잘 설명했다. "자유·정의·인간 존엄 등은 독일과 미국의 우의와 연대의 근간을 이루는 공동 가치요 원칙이다. 우리는 맹방이기 때문에 같은 이념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이념을 가졌기에 맹방이고, 동일한 도덕적 기준을 지녔기에 맹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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