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가해자들 눈물 철철 반성문… 알고보니 온라인서 몇천원에 거래

조선일보
입력 2020.04.02 03:00

"하루하루가 지옥 같습니다." "정신이 혼미합니다."

텔레그램 n번방 등 성(性)범죄에 엮인 사람들이 이런 내용의 글을 수사·사법 기관에 올리고 있다. 그런데 글쓴이는 '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들이다.

성 착취물 공유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와 공범 이모(16·아이디 '태평양')군, 'n번방' 운영자 전모(38·아이디 '와치맨')씨 등 최근 검거되거나 자수한 성 범죄자들이 한결같이 수사·사법 기관에 반성문을 내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성 범죄자들 사이에서 감형(減刑)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처럼 공유되고 있으며, 일종의 '모범 반성문'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1일 본지 취재 결과, 네이버에서는 각종 성범죄로 입건된 피의자들이 각자의 사건과 경험을 공유하는 카페가 활동 중이었다. 2010년 개설돼 현재 회원 수는 2만1000명. 이곳에 '반성문' 키워드로 올라온 상담 글만 수천 건이다.

이런 상담에 대한 답변은 대개 정해져 있다. '법률 서식 사이트에 가서 반성문을 구입하라'는 조언과 함께 인터넷 주소 링크를 제공하는 것이다. 링크를 따라 법률 서식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실제 경찰·법원 등에 제출됐던 반성문 샘플이 1000~5만원에 올라와 있었다. '지하철 성추행' '성폭행' 등 시나리오도 다양했다.

이 가운데 몇 종을 돈 내고 내려받아 봤다. 2000원짜리 반성문은 3쪽 분량이었는데 '죄송'(7번) '후회'(5번) '반성'(6번) '기회'(6번) '사죄'(5번) '고통'(4번) 등의 단어로 가득했다. 이 반성문 다운로드 횟수는 3167여건이었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나이 서른도 안 됐는데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면 인생 날아갑니다"처럼 좀 더 그럴싸한 표현이 등장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언급'도 단골 소재였다. "IMF 외환 위기 당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지병으로 누워계시다" 등이다.

카페에서는 피의자들끼리 서로 힘을 모아 반성문 첨삭도 해준다. "반성문에서 대놓고 선처를 요구하지 말라" "'재범 방지'에 초점을 맞춰 적어라"는 식이다.

효과는 어떨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1~11월 선고된 137건의 하급심 성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35%에 해당하는 48건에서 '반성 및 뉘우침'이 양형 요소였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반성문 작성을 대행하고, 사고파는 상황에서 경우에 따라 판사가 자의적으로 반성문을 양형 기준으로 삼는 건 말이 안 되는 관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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