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마다… 화성 '만세꾼' 횃불이 타오른다

입력 2020.03.27 04:17

[그곳의 건축] [1] 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2000명 "만세" 외쳤던 31㎞ 연결, 그 시작점에 방문자 센터 만들어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 수상… 민초 이름붙인 벽돌로 9m 추모탑
내부엔 감옥 연상시키는 추모길, 맞은편 유리창엔 푸른 대나무가

1919년 4월 3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주곡리에 '만세꾼'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까지 화성 일대를 누비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꾼은 눈덩이처럼 늘어 2000명이 됐고 거센 항쟁으로 치달았다. 일제의 통치기관이던 장안면·우정면사무소를 불태웠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해 일본 순사를 처단했다. 당시 화성의 만세운동은 3·1운동 기조와 달리 무력항쟁이었다. 이 때문에 일제의 보복에 크나큰 희생도 치렀다. 일제는 15일 군대를 투입해 제암리 주민 20여명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하고 민가를 불태웠으며(제암리 학살사건), 인근 고주리에서는 독립운동가 김흥렬과 일가 6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 101년 전 만세운동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는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부터 화성시가 작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조성한 '만세길'도 이어진다. 약 5년 동안 고증을 거쳐 만세꾼들이 태극기를 들고 행진했던 투쟁과 희생의 길 31㎞를 연결했다. 독립운동가 차희식·차병혁·백낙열·김연방·최진성 선생의 생가나 집터, 횃불 시위가 벌어진 개죽산,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쌍봉산, 옛 장안면·우정면사무소터 등 15개 주요 지점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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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거센 항쟁을 벌였던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 들어선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지난 2월 iF 국제디자인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보건지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과거·현재가 소통하며 자유와 독립의 의지를 담아냈다. 외부에 덧댄 첨탑은 횃불을 상징한다. /화성시
방문자센터는 지난 2월 'iF 디자인 어워드 2020'에서 금상을 받은 화성시의 대표 건축물이다.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iF 디자인 어워드는 IDEA,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힌다. 방문자센터는 '실내건축'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으며, 금상은 7298개 출품작 가운데 75개에 불과하다. 심사위원들은 "방문자센터는 역사를 투영하는 평화의 기운으로 가득 찬 비어 있는 공간"이라며 "기존의 건축물에 타공 쌓기로 새롭게 올린 벽은 내부·외부, 과거·현재를 이어주어 강력한 디자인이 형태와 의미를 연결해주는 힘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센터는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건물 시멘트 블록 벽체를 살려 리모델링했다. 대지 약 100평(330㎡)에 건평 약 60평(197㎡)짜리 단층 건물이다. 1990년 여산 송씨 문중에서 희사한 땅에 건물을 올려 2017년까지 우정보건지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바깥에서 보면 9m 높이 추모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골 기둥 사이에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첨탑 형태다. 3·1운동 당시 인근 개죽산에서 타올랐던 횃불, 용기와 의지를 상징한다. 벽돌에는 '이경백' '윤병소' '홍애시덕' '홍원식 부인 김씨' 등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민초들의 이름표를 붙였다. 센터 내·외부는 기존의 벽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벽돌 벽을 쌓아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고 소통하는 의미를 담아냈다.

어두운 감옥 같은 내부의 ‘추모길’(아래 작은 사진)에는 유리창을 달아 희망의 빛이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어두운 감옥 같은 내부의 ‘추모길’(아래 작은 사진)에는 유리창을 달아 희망의 빛이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화성시

센터 내부 한가운데에 배치한 추모길은 길이 3m, 폭 1m 남짓한 골목처럼 만들어졌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거칠게 드러난 양쪽 벽면의 벽돌은 감옥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사계절 푸른 대나무가 보이는 유리창이 희망을 꿈꾸게 만든다. 바닥에는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등 현대어로 바꾼 기미독립선언문 구절이 꽃처럼 설치됐다. 글귀를 읽으려면 자연스레 고개를 낮출 수밖에 없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방문자센터는 설계비 2000만원, 건축비 2억8000만원 등 3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설계는 오유에이 건축사무소, SOAP 디자인스튜디오가 공동 수행했고, 시공은 ㈜삼우가 맡았다. 설계를 맡은 SOAP의 권순엽 대표는 "100년 전 31㎞에 이르는 만세길에 어린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방문자센터에서 축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며 "100년의 시간적 차이를 공간을 통해 만나게 하고,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한 공간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슈퍼젤리가 맡은 만세길 브랜딩도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3·1'을 표현한 로고 디자인은 태극기와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모티브로 했다. 검정은 당시 우리 민족의 고난을, 빨강은 저항 정신을 뜻한다. 방문자센터 곳곳에 깔린 화산석도 불타는 마을, 선열들의 희생 등을 두루 표현하고 있다.

화성시는 만세길 31㎞ 구간을 따라 이정표와 안내문을 세우고 3·1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작년 4월 이후 방문자센터에는 4300여명이 방문했다. 최근에는 우한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관하고 있다. 방문자센터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류종덕(63)씨는 "화성이나 수도권은 물론 멀리 울산에서 단체 방문을 오기도 했다"며 "한여름에 '독립정신을 체험하겠다'며 당일 완주를 하고 땀에 전 모습으로 돌아온 대학생들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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