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음악이 史料를 만나면

조선일보
  • 송현민 음악평론가
입력 2020.03.27 03:00

송현민 음악평론가
송현민 음악평론가
1980년대 음악잡지를 뒤지다 '공연 프로그램북 수집가'란 제목에 눈이 갔다. 연주자 이력, 곡목 해설을 담은 팸플릿은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해를 돕는 자료(資料)가 되고, 훗날 그날의 공연을 기억하는 사료(史料)가 된다. 예전에 인터뷰한 어느 노(老)평론가는 1919년 일본 성악가 야나기 가네코의 독창회 프로그램북을 촉감으로 기억해 흥미로웠다. 조선민족미술관 설립 후원을 위한 음악회였고, 남편 야나기 무네요시도 민예연구가였으니 표지와 내지를 각각 비단과 한지를 사용해 조선과 민예의 느낌을 더한 것이었다.

근래 한국음악계 100년사를 살펴보는 글을 쓰고 있다. 매번 부족한 사료가 아쉽다. 100여 년 동안 한국을 클래식 '수입국'에서 '강국'으로 만든 음악가가 많지만, 그들에 대한 기록은 관리가 안 되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한국영상자료원 등은 기획전을 통해 흩어진 사료를 모으고 도록을 만들어 역사의 빈틈을 메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클래식사를 살펴보는 전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1900년 대구 사문진으로 유입된 한국 최초의 피아노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피아노사(史)를 살펴보는 전시를 한다면 사료의 현주소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40여 년 전 공연 프로그램 수집가가 있었다면, 이제는 조직과 규모를 갖춘 전문기관이 기록들을 수집·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으로 운영되는 예술자료원이나 공연예술박물관의 기능도 보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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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와 음악의 만남은 흥미로운 전시가 된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자신의 음반과 기사를 설명하는 도슨트가 되고, 20대 콩쿠르 참전기를 회상하며 당시의 출전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까마득한 후학이 원로 선배에게 피아노 선율을 헌사한다면 기록물과 음악이 어우러진 전시가 되지 않을까. 역사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한국 음악계의 주인공은 현재도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사료의 저장고를 찬찬히 채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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