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팬데믹 이후의 세상

조선일보
  •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입력 2020.03.26 21:30 | 수정 2020.03.27 02:36

2차대전 후 역사상 최대로 신혼부부 급증한 미국
간편 요리, 핵가족 문화 퍼져 새로운 산업 성장
코로나도 재택근무·원격진료·화상회의 확산시키고
오프라인 업종 쇠락, 인터넷 거래 성장으로 산업 재편
20세기가 두 번의 세계대전 통해 탄생한 것처럼
21세기는 팬데믹 거치며 탄생했다고 歷史가 진단할 것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많은 역사학자들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가장 큰 사회적인 변화를 겪은 시점은 2차대전이 끝난 후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기간은 4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미국 전체의 11%가 넘는 인구가 참전한 전쟁이었다. 많은 장병이 전사했지만, 여전히 많은 장병이 살아서 돌아왔고, 그중 많은 사람이 전쟁 기간 동안 미뤘던 결혼식을 단기간에 올리면서 미국 사회는 큰 주택 부족에 직면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의 단독주택을 단기간에 공급하기 위한 '레비타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미국 역사상 최대 숫자로 탄생한 신혼부부들을 수용하도록 도왔다.

미국을 바꾼 2차 세계대전

진정한 사회 변화는 그 후에 일어났다. 과거에는 신혼 가정은 부모에게서 가르침을 받아가면서 요리며 살림하는 법을 배웠는데, 일시에 멀리 떨어진 신도시에 정착한 신혼부부들은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의 틈을 파고든 것이 베티 크로커를 비롯한 간편 요리책, TV 요리쇼, 그리고 즉석 요리가 가능한 패키지 음식들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미국식 음식과 핵가족 문화는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가 많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다.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에 이어 100년 만에 지구를 강타한 팬데믹인 코로나19로 인해 월스트리트에서는 1987년 이래 최악의 주가 폭락을 기록했지만, 아직도 바닥을 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 전염병을 막을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앞으로 최소 1년에서 1년 반이 걸린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렇게 장기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의 일상적인 생활이 중단된 예는 (아마도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일 년 넘게 장기간 일상생활이 변화하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습관이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습관이 사라지면 전통적인 업계가 사라지고, 새로운 습관의 등장은 새로운 업계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꿔놓을 세상을 예측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가장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대체 서비스의 급성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장기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업무 프로세스에 익숙해질 경우, 과연 다시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모여서 일할 것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미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종료되는 시점에 약 25%의 인력은 다시는 회사로 돌아오지 않고 원격·재택근무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직장문화의 대변혁이 될 수 있다.

디지털 대체 서비스는 회사 업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전염병을 검사, 치료하던 의료진이 감염,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원격진료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화상회의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원격진료 기술은 최근 들어 크게 발전했지만, 업계의 관성과 환자들의 거부감 등으로 인해 확산이 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그런 생각을 바꾸고 원격진료의 확산을 가져올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진정한 21세기, 코로나 통해 탄생할 것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기업의 주가가 떨어졌지만, 모두가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밀려드는 주문을 해결하기 위해 10만명의 직원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고, 월마트 역시 15만명을 충원한다. 특히 배달업계의 경우 앞으로의 1~2년은 새롭게 얻은 고객들에게 배달 습관을 익히게 만드는 기간이 될 것이다. 반면, 이미 '리테일의 종말'을 겪고 있던 백화점 등 대부분의 오프라인 소매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살아서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팬데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극장과 음식점 등은 위기만 잘 넘기면 재기할 수 있는 업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아무도 완전한 회복을 장담하지 못한다. 영화사들은 급한 대로 새 영화의 개봉을 미루거나 아예 처음부터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방향을 틀고 있고, 식당들은 배달 음식 전용 주방만 운영하는 형태의 고육지책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 문제는 장기간 이런 변화에 익숙해지는 소비자의 행동 변화다. 이들 업계에서는 전염병이 종식되어도 극장과 음식점이 예전과 같은 수준의 오프라인 시장을 회복하지 못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제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의 생산공장 중국이 전염병으로 가동을 멈추자 전 세계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중국에 크게 의존해왔는지 깨닫게 되었고, 중국이 자국 수요 때문에 약이나 마스크의 해외 수출을 막자 각 국가의 정부는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압력까지 받아야 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해외의 생산 기지를 축소하고 자국 내에 로봇을 통한 생산 라인을 확충하는 등 전통적인 의미의 세계화에 제동을 걸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이 이끄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인들은 자유무역에 실망하고 트럼프를 뽑았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유무역의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탄생할 세상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되든 훗날의 역사가들은 진정한 21세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팬데믹을 통해 탄생했다고 진단할지 모른다. 20세기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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