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수갑 찬 조주빈이 손석희를 갖고 놀다

입력 2020.03.26 18:17


2005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광주에 사는 마흔아홉 살 김모씨가 시장과 도지사를 포함해서 전국 지자체 단체장과 공무원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협박을 했다. "몰래 카메라를 촬영했다." "당신이 여자와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했다." 기타 등등.

결과는 어땠을까. 이 사람이 전화번호부를 보고 전국에 있는 공무원 600명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여자랑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찍었다’고 했는데, 무려 53명이 자세한 증거물을 보지도 묻지도 않고 돈을 보내왔다. 그렇게 뜯어낸 돈이 1억3천만 원이었다. 범인은 나중에 경찰에서 "교도소 출소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예상 외로 몰래 카메라 협박이 잘 먹혀들어서 100만원~500만원씩을 보내왔고, 그것을 대포통장으로 받아 모두 유흥비로 썼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고위공직자나 유명인사들 중에 ‘구린 데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기 협박범에게 잘 걸려든다는 뜻이다. 특히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는 협박’이 제대로 먹혀든다고 한다.

성 착취 영상물을 운영하고 유포한 범인, 얼굴과 신상이 모두 공개된 범인, 스물다섯 살 조주빈, 이 조주빈이 어제 아침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 섰다. 그런데 조주빈이 오래 전부터 준비한 듯, 작심한 듯 깜짝 놀랄 발언을 했다.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그러자 현장 취재진은 물론, 온 나라 안이 발칵 뒤집힌 듯 했다. 조주빈을 체포하고 수사한 경찰도 갑자기 당황한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조주빈 대신 손석희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다.

아마 손석희 사장 본인과 종편방송사 JTBC도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이날 오후 손석희 사장 측은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신속하게 입장문을 내놓았다. 손 사장 측과 JTBC는 발 빠르게 사태를 진화하려고 자신을 해명하는 입장문을 내놓았겠지만, 항용 그렇듯이 서둘러 내놓은 입장문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 입장문이라는 것을 분석해보겠다. 입장문 앞부분이다.

"박사방 조주빈 발언에 대한 JTBC 손석희 사장의 입장을 밝힙니다. 박사방 조주빈은 당초 손석희 사장에게 자신이 흥신소 사장이라며 텔레그램을 통해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손사장과 분쟁 중인 K씨가 손사장 및 그의 가족들을 상대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 행동책을 찾고 있고 이를 위해 본인에게 접근했다’고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K씨와 대화를 나눈 것처럼 조작된 텔레그램 문자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보겠다. 먼저 이 입장문은 손석희 사장 명의로 내놓은 게 아니라 JTBC가 회사 명의로 내놓은 것이다. 첫 번째 의문은, 이번 일은 손석희 개인에 관한 일인데, 개인이 사기 협박을 당했다는 일인데, 왜 개인이 본인 명의로 입장문을 내거나 개인 변호사를 통해서 입장을 밝히지 않고, JTBC란 회사 이름으로 입장문을 냈는가 하는 점이다. 백번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번 일은 손석희 사장이 ‘대표이사의 직무’를 수행하다 불거진 일이 아니다. 회사가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혹시 손석희 사장이 회사 이름 뒤로 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둘째, 입장문은 조주빈이 ‘텔레그램을 통해 (손 사장에게) 접근했다’고 했는데, 저도 텔레그램을 수년 전부터 쓰고 있어서 잘 아는데, 텔레그램은 상대방 전화번호가 내 휴대폰에 내장돼 있어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니까 조주빈은 손석희 사장의 개인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고, 그 휴대폰에 손사장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는 뜻이다. 어떤 회사든 최고 경영자의 개인 휴대폰 번호는 그 회사의 아래 직원들은 물론이고 중간 간부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조주빈은 어떻게 손 사장의 휴대폰 번호를 손에 넣게 되었을까. 여러 끔찍한 상상이 가능하지만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다.

다음 의문을 짚어보겠다. JTBC는 입장문에서 "그리고 (조주빈이) ‘손사장과 분쟁 중인 K씨가 손사장 및 그의 가족들을 상대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 행동책을 찾고 있고 이를 위해 본인에게 접근했다’고 속였다"고 돼 있다. 일단 문장을 참 못 썼다. 한 문장에 ‘위해’라는 표현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오는데 뜻이 다르다. 앞에 ‘위해’는 한자로 ‘위해(危害)’이고, 뒤에 나오는 두 번의 ‘위해’는 ‘위(爲)하여’라는 뜻이다. 이건 이렇다 치고, 여기 나오는 K씨는 김웅 기자를 지칭하는데, 그 사람은 손사장의 ‘뺑소니 의혹’, ‘여성 동승자 소문’ 등등이 불거지게 한 장본인이자, 손사장과 함께 ‘폭행’과 ‘공갈 미수’로 쌍방 기소가 되어 있는 상태다.

자, 여기서 ‘(김웅 기자가) (손사장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행동책을 찾고 있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위해(危害)’라는 것은 보통은 상대방의 생명과 육체를 해치는 행위를 뜻한다. JTBC 입장문은 ‘행동책’이란 단어도 썼다. 행동책은 조폭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런데 김웅 기자도, 조주빈도 조직폭력배는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위해(危害)를 가하려 했다’는 것은 ‘어두운 골목길 폭행’ 같은 것을 뜻하기 보다는 손 사장 측이 숨기고 싶은, ‘어떤 사생활을 몰래 촬영한 영상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근거가 있다. 조주빈은 김웅 기자에게 접근해서 "손석희 관련 제보 영상 있다"면서 현금 15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뺑소니 영상’인지, 아니면 ‘동승 여성 관련 영상’인지, 그 부분은 앞으로 더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조주빈이 손석희 사장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던 김웅 기자에게 ‘손석희 사장 관련 영상’을 미끼로 무려 1500만원을 뜯어냈다는 게 확인됐고, JTBC 입장문은 ‘김웅 기자가 위해를 가하려 했다’고 확인했으니, 여기서 말한 ‘위해’라고 하는 것은 ‘신체 폭행’이라기 보다 ‘영상 폭로’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의심인 것이다.

또 다른 궁금증은, 왜 공갈 협박을 당했다는 손석희 사장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심지어 "한동안 손 사장과 가족들이 불안감에 떨었다"고까지 했으면서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JTBC 입장문은 이렇게 해명했다. "설사 조주빈을 신고해도 또 다른 행동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에 매우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신고를 미루던 참이었다." 이 부분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위해를 가하려는 궁극 원인이자 주범이 조주빈이 아니라 김웅 기자였다면, 당장 김웅 기자를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 아닌가. 36년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현직 방송사 대표라는 사람이 전혀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셈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감추고 싶기 때문에 나온 위장망일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둘러 발표한 입장문에는 반드시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거꾸로 진실의 일단을 보여주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조주빈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흉악범이다. 그런데 그가 기자들 앞에서 작심한 듯 손석희 사장을 지목해서 "사죄한다"고 했다. 조주빈은 왜 사죄한다면서 거꾸로 손석희 사장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조주빈이 정말 노리고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범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피해자라는 방송대 대표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일까. 손사장은 지금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

손 사장은 조주빈에게 상당한 금액을 송금했다고 털어놓았다. "증거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뜯기는 경우란, 어린 자식이 납치됐을 때 부모가 인질범에게 돈을 건네는 경우가 그렇다. 그게 아닌데 공갈협박범에게 돈을 건넸다면 구린데가 많은 사람이라는 반증이다. 앞서 말씀 드린 공무원 53명도 ‘여자랑 여관 들어가는 것을 찍었다’는 협박에 1억3천만원을 뜯겼다. 조주빈이 반사회적 흉악범이긴 해도 인질범은 아니다. 그렇다면 손사장은 조주빈에게 자신의 그 무엇이 볼모로 잡힐 수도 있다고 본 것일까. 과거 조주빈은 자신의 대화방에서 손사장이랑 "형 동생 하는 사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JTBC 손석희 사장실에 "프리패스"로 드나든다고도 했으며, 뺑소니와 여성 동승자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과천 교회 주차장 CCTV 그리고 블랙박스를 자신이 제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인은 으레 거짓말을 한다고 봐야 할까. 방송사 대표는 항상 진실만을 말할까. ‘빅콘 게임’이라는 책이 있다. 미국의 사기 범죄를 모아서 분석해놓은 책이다. 결론은 이렇다. ‘정직한 사람에게 사기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두고두고 새겨볼 말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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