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바주카포 쏘는 파월, 소총 들고 머뭇대는 이주열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16

[코로나 경제위기] 美연준 의장·한은 총재, 너무 다른 코로나 대응

美, 제로금리 이어 무제한 달러 살포… 회사채 사주며 기업 지원
韓, 뒤늦게 금리 0.5%p 내리고 "정부 보증 있어야 기업어음 매입"

"한국은행의 문제의식이 안일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0일 은성수 금융위원장 주재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하면서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단지 금리 인하 타이밍이 늦었다는 것뿐 아니라, 회사채까지 직접 사들이는 미국 중앙은행과 달리 한은의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너무나 소극적이라는 점을 꼬집은 말이었다.

코로나 충격으로 경제가 멈춰 서면서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모세혈관부터 급속도로 자금줄이 막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미온적인 대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동걸 회장이 공개 지적한 말은 자금줄이 마른 경제계가 한은을 보는 시각이나 다름없다. 한은은 "한국은행법상 돈을 찍어 가며 부실기업 지원에 직접 나설 수는 없다"고 항변하지만, 경제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국보다 우리 경제 사정이 낫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전면에 나선 美 연준, 숨은 韓銀

일단 금리 인하 타이밍부터 늦었다. 본지가 각국에서 코로나 확진자 100명 발생 후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을 분석했더니, 이미 마이너스 금리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가장 느렸다. 미국은 지난 2일(현지 시각)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서자 바로 다음 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임시 화상회의를 열어 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15일에는 제로금리까지 내리고 시중에 7000억달러(약 860조원)를 쏟아붓는 대규모 양적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캐나다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미미하던 4일 G7(주요 7개국) 공조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고, 11일 확진자가 100명을 돌파하자 이틀 뒤인 13일 금리를 다시 내렸다. 호주·뉴질랜드·말레이시아 등은 확진자가 100명이 안 됐는데도 금리를 내리는 등 일제히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한, 미 중앙은행의 코로나 위기 대처 비교표
그래픽=이철원

우리나라에선 지난달 20일 확진자가 100명을 돌파했지만, 한은은 그로부터 25일이나 지난 이달 16일에야 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채권 매입, 국고채 매입 등에도 나섰지만 그 규모는 다 해봐야 4조원 남짓. 여기에 정부에서 마련하는 채권시장·증권시장 안정 펀드에 절반 정도 유동성을 지원해 전체 금융 지원 규모는 현재까지 25조원 정도이다.

연준은 타이밍도, 대응책 규모도 딴판이다. 2008년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은행 구제금융책이 나오기까지 4개월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한 달도 되지 않아 각종 금융 대책이 집행된다. 특히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무제한 사들이고, 자금난에 처한 회사들의 회사채도 직접 사들이기로 했다. 금융 위기 때도 쓰지 않았던 카드까지 꺼냈다.

◇"폭격기로 융단폭격할 때 소총 한 자루"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늘면서, 한국은행도 미 연준처럼 회사채와 CP(기업어음)를 직접 사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한국은행법 제68조 등을 근거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한은법상 국채나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경우에만 발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보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란은 2016년에도 있었다. 당시 조선·해양 산업 구조 조정에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이른바 '한국판 양적 완화' 필요성이 제기되자, 한은은 이번과 같은 이유를 대며 버티다 결국 중소기업은행을 통해 10조원 한도로 우회 지원하는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었다. 정권이 바뀐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한은은 오히려 정부 당국의 대처가 안일하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미 연준 역시 재무부의 100억 달러 보증이 패키지로 들어가는 덕분에 손실 위험이 있는 CP를 매입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연준이 마치 전지전능한 올마이티(almighty)처럼 비치고 있지만, 연준-정부-국회의 삼각편대가 기민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나오는 정책들"이라며 "정부에서 보증하겠다고만 하면 회사채나 CP를 못 사들일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미 연준이 폭격기처럼 융단폭격을 한다면 한은은 소총 한 자루로 쏘는 꼴"이라며 적극적인 한은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기관 임원은 "인플레(물가 상승) 걱정하던 시절의 추억에 젖어 있는 한은 인사들이 너무 많다"며 "지금은 디플레(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와 대량 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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