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 타향살이한 '청와대 불상'… 출생지 밝혀질까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00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석불 좌상, 조선 총독이 서울 관저로 옮겨
원위치 추정 이거사터 발굴 시작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투영된 청와대 불상. ‘미남불’로도 불리는 이 석불좌상을 원래 있었던 경주로 이전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투영된 청와대 불상. ‘미남불’로도 불리는 이 석불좌상을 원래 있었던 경주로 이전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
107년 전 고향을 떠난 '청와대 불상'의 출생지를 밝힐 결정적 증거가 나올까. 청와대 경내에 있는 보물 1977호 '경주 방형대좌(方形臺座) 석조여래좌상'의 원위치를 고증할 수 있는 본격 발굴이 시작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위원회가 청와대 불상 원위치로 추정되는 경주 이거사(移車寺) 터 정밀 발굴 조사 안건을 심의해 가결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달 끝난 시굴 조사 결과 이거사 터 금당 기단 하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과 통일신라 건물 터,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확인했다"며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 발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연 많고 괴담 많은 기구한 불상

청와대 불상은 9세기 통일신라에 만든 석불 좌상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닮아 '미남불(美男佛)'로 통한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진 눈꼬리가 돋보인다.

원래 경주에 있던 이 석불이 권력의 심장부 청와대에 앉은 데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1912년 경주 시찰을 갔다가 이 잘생긴 불상을 눈여겨봤다. 이듬해 불상은 서울 남산 총독 관저로 옮겨졌고, 1939년 총독 관저가 경무대(청와대 이전 명칭)로 이전하면서 현재까지 남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석불 괴담'도 나돌았다.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대형 재난이 빈발하자 시중에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불상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재앙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급기야 청와대가 출입 기자단에 불상을 공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문화재청 "이전 논의할 단계 아니다"

경주 지역 시민 단체는 "청와대 불상을 하루빨리 고향인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불교계는 "원위치에 대한 연구를 거친 후에 옮겨도 늦지 않다"는 입장. 문제는 불상의 정확한 출토지가 경주 내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8년 일제강점기 문헌인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에서 불상 원위치가 이거사 터임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되면서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신라사적고'에 따르면 도지리(道只里) 이거사 터 항목에 "다이쇼(大正) 2년(1913년) 중에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내용이 있다. 신라사적고는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사오(諸鹿央雄)가 1916년 출판한 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문헌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고 일단 발굴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설령 그 자리가 맞는다는 결정적 근거가 나와도 섣불리 이전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이거사 터 일대가 사유지인 데다 불상을 조성하기 쉬운 환경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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