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재택근무·강의·파티까지… 실리콘밸리는 지금 "Zoom하자"

입력 2020.03.26 03:00

[테크 인 실리콘밸리] '강제 외출 금지' 일주일… 코로나가 만든 新트렌드

화상회의·채팅 애용하는 '줌 세대' - 단체 채팅방 열어 강의·회의하고
'가상 술자리' '재택 클럽'도 즐겨… NYT "우리는 줌에 살고 있다"

재택근무 불편 호소하기도 - 직원 창의성 극대화하는 사옥과
각종 사내복지 못 누려 효율 저하, 외부 근무 땐 보안 유출도 우려

기업들, 자금난에 현금 확보 경쟁 - 정리 해고·연봉 삭감 잇따라
유니콘으로 각광받던 '라임'마저 사업 악화로 직원 감원에 나서

지난 20일 저녁 8시(현지 시각),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택. 동료와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상 채팅 서비스인 구글 행아웃(hangouts)을 켜자,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속속 입장했다. 각자 마실 술과 음료수, 음식를 준비한 채였다. "건배 한번 할까요?" 모두 노트북 화면에 대고 잔을 치켜올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bay) 지역에 '외출 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다. '필수 용무 외에는 외출 금지, 설사 외출한대도 상대방과 6피트(1.8m) 이상 반드시 떨어질 것.' 이런 숨 막히는 지시를 피해 유행하는 것이 이른바 '가상 술자리(Virtual Happy hour)'다. 지난 22일 오후에는 유명 DJ 디나이스(D-Nice)가 자택에서 인스타그램 방송을 통해 개최한 '가상 클럽 파티'가 화제였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비롯해 16만여 명이 각자의 집에서 새로운 '재택 클럽' 문화를 만끽했다.

구글·애플 같은 거대 테크 기업부터 동네 소매점까지 강제 외출 금지 명령이 떨어진 실리콘밸리의 겉모습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춰보면 '코로나 시대'의 새 트렌드와 함께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필사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Z세대 아닌 줌 세대"

화상 채팅 서비스 줌(Zoom)은 하나의 서비스를 넘어 사회현상이 됐다. 현재 실리콘밸리를 줌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재택근무도, 대학 강의도, 친구와 만남도 모두 줌으로 이뤄진다. 미 언론들은 줌을 애용하는 젊은 세대를 'Z세대'가 아닌 '줌 세대', 혹은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부머(Boomers)에 빗대 주머(Zoomers)라고 이름 붙였다. 화상 채팅을 하자는 말이 과거엔 '스카이프(Skype) 하자'였다면 이제는 '줌 하자'가 대세다. 대학생들은 일제히 화상 강의에 들어간 대학들을 향해 '어차피 모두 줌 대학 아니냐'며 '줌 대학'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닌다.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지금 줌에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①17일(현지 시각) ‘외출 금지’ 명령이 내려진 미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본사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②미국인들이 화상회의 앱상에 모여 가상 술자리 모임(Virtual Happy Hours)을 하는 모습. ③애플 본사 입구에 들어오는 차량을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①17일(현지 시각) ‘외출 금지’ 명령이 내려진 미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본사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②미국인들이 화상회의 앱상에 모여 가상 술자리 모임(Virtual Happy Hours)을 하는 모습. ③애플 본사 입구에 들어오는 차량을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AP 연합뉴스·실리콘밸리=박순찬 특파원
'줌 에티켓'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화장실 혹은 식사 등을 위해 자리를 뜰 때 양해를 구하고, 대화할 때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방 개설자는 가장 마지막에 자리를 뜨는 것 등이다.

줌은 2011년 중국계 미국인 에릭 위안이 창업한 서비스다. 현재 월 이용자는 1300만여 명. 행아웃, 팀즈(Teams), 스카이프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를 제쳤다. 접속이 안정적이고,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1대1 대화는 무제한 무료로 제공하지만, 3명 이상 참여한 대화는 40분으로 제한돼 있다. 그 이상을 원하면 월 14.99달러(약 1만9000원)짜리 유료 회원이 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는 재택근무 싫어해

화상회의, 채팅 서비스 줌 정리 표

실리콘밸리는 예상과 달리 재택근무에 가장 불편함을 호소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어느 지역보다 회사에서 일할 때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밥 문제'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같은 유명 테크 기업 본사는 호텔급 사내 식당으로 유명하다. 미국·일본·인도·멕시코 요리 등 고급 식사를 하루 세 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인재 유치를 위한 대표 복지다. 재택근무 중인 구글 본사의 한 직원은 "회사에서는 훌륭한 식사와 간식, 첨단 운동 시설에 심지어 세탁까지 가능할 만큼 좋은 환경이라 재택근무를 불편해 하는 직원들도 꽤 있다"고 했다.

또 주요 테크 기업 본사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직원들이 창의성을 극대화하도록 디자인돼 있다. 식당이나 카페, 휴게실, 화장실에 갈 때 다양한 부서 직원들이 통로에서 서로 맞부딪히도록 동선(動線)을 짰다.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한마디씩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어렵던 문제가 풀리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자도 재택근무를 격렬히 반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의 높은 집값이 재택근무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팰로앨토에 위치한 기업용 전자 결제 서비스 기업 빌닷컴(bill.com)은 지난 11일부터 600여 직원이 한 달간의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이 회사 정보라 부사장은 "실리콘밸리는 집값이 비싸 일부 젊은 직원들은 룸메이트 여럿과 함께 생활하는 등 재택근무 여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조용히 일할 환경과 고성능 인터넷을 찾아 스타벅스 등 외부로 나가서 일할 경우, 회사 보안이 유출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우량 기업 M&A 기회… 현금 확보 경쟁

실리콘밸리에선 '현금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줄어드는 악조건에서 'V자 반등'이 올 때까지 버티기 위한 생존 자금이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 투자사인 세콰이아캐피털은 최근 투자 기업들에 보낸 메모에서 '몇 분기 버틸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마련하고 비용을 최대한 줄이라'고 충고했다. 신규 투자 유치와 동시에 정리 해고, 연봉 삭감 등을 통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라는 것이다.

미 IT(정보기술)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4곳이 현금 확보를 위해 직원 20%가량을 해고했다'며 실리콘밸리의 정리 해고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전기 스쿠터 공유 업체인 라임도 최근 사업 악화로 50~70명 감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를 기회로 뒤집으려는 노력도 치열하다. 20년 경력의 실리콘밸리 투자자인 음재훈 전 트랜스링크캐피탈 대표는 "경험이 적은 벤처투자사는 코로나 사태로 개점휴업 상태겠지만, 노련한 투자자들은 과거에 놓쳤던 유망 스타트업을 찾아 재투자를 타진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의 한 상장 기업 임원은 "경영진이 위기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서,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찾고 있다"며 "특히 자금난으로 위기에 처한 우량 기업을 눈여겨보면서 인재 확보를 위한 '애크하이어(Acqhire·고용을 위한 기업 인수)' 등도 검토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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