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꿈에 딱 두번… 무심한 상준아, 얼굴 한 번 보여주렴"

입력 2020.03.26 03:00 | 수정 2020.03.26 07:43

[천안함 10주기] 유족·생존장병이 말하는 천안함 10년

아픈 무릎으로 추모비 찾는 아빠, 꿈에 나오길 매일 기도하는 엄마
후유증에 술 없이 잠 못드는 동료…
"천안함 지우는 게 평화 아닐텐데 정부한테 외면받고 잊히고 있어"

천안함 폭침 후 10년이 흘렀다. 전함(戰艦)이 가라앉은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엔 희생 장병 46명의 위령탑이 세워졌다. 폭침 당시 "분하고 슬프다, 나도 커서 군인이 되고 싶다"며 그림일기를 썼던 초등학생 권현우(20)씨는 어느덧 성인이 돼 지난달 해군사관학교 78기로 입학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의 아픔은 계속된다. 생존 장병들은 숨진 전우(戰友)를 대신해 오늘도 전투 중이다. 상대만 '북한군'에서 '정부와 대중의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유족의 아픔도 그대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유품을 다 태워버린 엄마는 "그래도 꿈에 한 번만 나타나 달라"며 여전히 기도하고 잠든다. 이들은 "천안함이 잊히는 게 평화는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다. 생존 장병 4인과 전사(戰死) 장병 7인의 유족을 만나 10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숨진 전우들에게 줄 선물로 웹툰 제작"

안재근(32)씨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병기병으로 근무하다가 피격으로 가라앉는 배 안에 마지막까지 남겨진 승조원을 수색했었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전우들 기일(忌日)마다 총성처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몰아치는데 특히 3월이 되면 증세가 심해진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10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천안함 생존 장병 함은혁(31) 예비역 하사가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 용사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폭침 이후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에 시달렸다는 함씨는 “죽은 전우들을 대신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천안함 사고를 다룬 웹툰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 10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천안함 생존 장병 함은혁(31) 예비역 하사가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 용사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폭침 이후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에 시달렸다는 함씨는 “죽은 전우들을 대신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천안함 사고를 다룬 웹툰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신현종 기자

천안함 폭침 생존자 중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총 9명. 다른 생존 장병들은 자비로 병원비를 부담하며 정신과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폭침 이후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에 시달렸다는 예비역 하사 함은혁(31)씨는 "술 없인 잠 못 들 때도 있었지만, 이젠 죽은 전우들을 대신해 천안함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웹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회장 전준영(33)씨는 공훈록을 2주간 밤새워 작업해 희생 장병을 위한 온라인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추모관 홈페이지엔 희생 장병들의 순직일과 공훈, 사진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전씨는 "앞으로 천안함 외에도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베트남 참전 유공자에 대한 정보도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했다.

◇"'장한 천안함 용사 엄마'로 불리고파"

고된 농사일로 연골이 닳아 두 다리에 인공 관절 삽입 수술을 받은 이용우(71)씨는 천안함 폭침 당시 실종된 고(故) 이상준 중사의 아버지다. 이씨는 보름에 한 번 추모비가 있는 뒷산을 오른다. 그는 "10년 동안 꿈에 딱 두 번 나온 아들이 무심하다. 아들이 한번은 유치원생 모습으로, 그다음엔 다 큰 모습으로 다가와 밝게 웃고는 사라지더라"고 했다.

유족들은 정부의 무심함에 울분을 토했다. 고 강태민 상병의 어머니 봉순복(55)씨는 "우리는 아들 뼛조각 하나 못 찾았는데 정부는 북한 눈치만 본다"며 "잊힌 우리 아들만 불쌍하게 됐다"고 했다. 고 이창기 준위의 형 이성기(55)씨는 "고향인 양평군에선 추모 흉상(胸像)이라도 만들어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에 비해 초라한 대우에 속앓이도 한다. 고 차균석 중사의 어머니 오양선(58)씨는 "세월호 기념관 같은 추모 공간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떳떳하게 '장한 천안함 용사 엄마'라고 말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 신선준 상사의 아버지 신국현(59)씨는 "군인들의 희생도 세월호 노란 리본처럼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측이 예비역 33명을 상대로 지난달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생존 예비역 33명 전원이 PTSD를 겪고 있다. 이들 중 전상(戰傷·전투 중 부상) 처리를 받은 건 9명에 불과하다. 부모를 여의고 군 생활을 했던 고 문영욱 중사는 국가유공자 등록을 해줄 가족이 없어 8년 넘게 미등록 상태로 방치됐다. 전우회 측은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부터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다"고 했다.

☞10년 전 오늘, 천안함에선…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백령도 해상에서 우리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1200t급)이 북한군 잠수함의 어뢰에 폭침된 사건. 이 사건으로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천안함 장병 46명이 전사했으며, 구조 과정에서 해군 특수전 요원(UDT/ SEAL)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영국 등 해외 전문가까지 포함한 민군합동조사단을 꾸렸고 그해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정보 당국은 당시 북한의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을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북한은 "특대형 모략극·날조극"이라며 반발했다. 두 동강 난 천안함 함체는 인양 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 전시돼 안보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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