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서 미래 기술 '뽐내기 쇼'… 아베의 꿈이 일그러지다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00

[Close-up] 도쿄올림픽 내년으로 연기… 각종 신기술 홍보 물거품

- 올림픽은 최고의 마케팅 무대
1964년 도쿄 대회 땐 신칸센 개통, 세계에 '첨단 기술 일본' 각인시켜

- 장기 테크 플랜 차질 불가피
자율주행차·웨어러블 로봇부터 수소 올림픽·8K 중계도 무산

-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기업
무작정 기술발표 미룰수도 없고 올림픽 무시하고 공개도 부담
"日 경제적 손실 35조원 달할 것"

7월 예정이던 도쿄 하계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울고 있다. 수십억명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 무대에서 자율주행·로봇·수소차 등 첨단 기술을 자랑하려던 모든 계획이 엎어졌기 때문이다. 도쿄를 무대로 신기술을 테스트한 후 상용화를 추진하려던 기업들의 장기 테크 플랜까지 줄줄이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도요타·파나소닉 등 일본 올림픽 후원사들은 4~5년 전부터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수조원대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부었다. 올림픽을 '일본 미래 기술의 쇼케이스장(場)'으로 만들려 했던 아베 정부의 꿈도 좌절됐다. 해당 기업들은 무작정 기술 발표를 미룰 수도 없고 내년에 열릴 올림픽을 무시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아베의 좌절

일본은 올림픽을 자국 기술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1964년 도쿄올림픽 때도 개막에 맞춰 초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을 개통해 전 세계에 '첨단 기술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패전 이후 국가 부흥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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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일본은 60여년 만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일본이 미래 산업 선두주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일본 정부는 기업에 2020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최첨단 기술을 공개하도록 압박했다. 동시에 도쿄 도심에서 자율주행차 운행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주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개최국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알리는 올림픽은 최고의 마케팅 무대다. 일본 항공사 ANA는 다음 달부터 일본 내 쇼핑몰·관광명소·박물관 등에 안내 로봇 '뉴미' 1000대를 배치할 계획이었다. 높이 100~150㎝ 로봇 몸체 윗부분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원격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양팔로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거나 쇼핑 물품을 들어줄 수 있다. 전자기업 후지쓰는 국제체조연맹과 함께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체조 경기 심판 로봇을 개발해왔다. 3D(입체) 영상과 레이저로 선수 움직임을 분석해 뒤틀기 등 체조 연기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파나소닉은 올림픽 경기장과 공항 등에서 선수단, 관광객의 짐을 드는 직원들을 보조하는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로봇 '파워 어시스트 슈트'를 개발했다. 등과 허리에 착용하면 무게의 20%가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초 도쿄올림픽에 투입할 서비스 로봇을 공개했다. 휴먼서포트로봇(HSR)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자리를 안내하고, 딜리버리 서포트 로봇(DSR)은 음식과 음료를 배달한다. 도요타는 로봇 16대를 각 경기장에 분산 배치해 성능을 확인한 뒤 2030년 상용화할 계획이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 차질?

도쿄올림픽 개최 연기는 미국과 함께 선두를 달리는 일본의 자율주행차 기술 상용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CNBC 등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 5년 동안 자율주행차·로봇 등 미래 기술 개발에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쏟아부었다. 대표적인 기술이 올림픽 선수촌을 달릴 자율주행 버스 'e-팔레트'다. 길이 5m, 높이 3m 크기의 이 버스는 운전자가 없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으로 운행되며 최대 20명(휠체어 이용자 4명)이 탈 수 있다. 도요타는 이 자율주행 버스를 선수촌과 경기장을 오가는 셔틀차량으로 사용해 자율주행차 기술을 홍보할 계획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도쿄에서 예정했던 자율주행차 시승 행사 개최도 불투명해졌다. 도요타는 일본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플라잉카(하늘을 나는 자동차) '스카이 드라이브'를 만들어 올림픽 성화(聖火)를 밝히는 데 사용할 계획도 추진해왔다.

일본 정부의 '수소 올림픽' 계획도 무산됐다. 도쿄올림픽은 대회 기간 성화, 성화봉 연료로 수소를 사용하고 선수촌에서는 수소차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올림픽 사상 첫 8K 스포츠 중계도 미뤄졌다. 8K는 기존 4K TV보다 화질이 4배 선명한 초고화질이다.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일본 NHK는 개·폐회식과 육상·수영·배드민턴 등 7개 종목의 일부 경기를 8K로 중계할 예정이었다.

◇모든 홍보 이벤트 취소

일본 기업들은 사실상 올해 예정했던 각종 기술 홍보 이벤트를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이 열리지 않으면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홍보에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자율주행차 등 해외 기업과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개발 일정을 미루기 힘들다. 이 때문에 도요타, 닛산 등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예정대로 도쿄 내 자율주행차 시험 주행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에 "기술 공개를 1년 뒤로 늦춰달라"고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림픽 연기에 기업 활동 취소까지 더해져 일본의 경제적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일본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올림픽 연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3조2000억엔(약 35조원)이라고 추산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 경쟁에서 미국과 격차가 벌어지고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올림픽을 계기로 반전을 노렸지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며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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