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모범 방역' 우기려고 국민을 또 코로나 험지로 내모나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20

미·유럽서 2차 波高 오는데 감염원 유입 안 막고 무방비
'중국 안 막은 것 잘못' 비칠까 개방방역이 옳다 고집 부려
국경 1차 방어망 열어놓으면 국민·방역당국은 힘겨운 싸움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국내 프로배구 리그에서 뛰던 이탈리아 출신 선수가 "코로나가 겁난다"며 고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3월 4일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바보 짓' 같지만 당시로선 합리적 선택이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10년 이상 걸리지만 코로나 전장(戰場)에서 나라 처지가 뒤바뀌는 주기(週期)는 한 달도 채 못 된다. 이달 초만 해도 확진자 순위에서 중국 다음이었던 한국이 어느새 9위로 내려앉았다. 하루 이틀 새 영국에도 추월당할 분위기다. 올림픽 메달 순위는 한 칸이라도 오르면 흐뭇했는데, 코로나 순위를 들여다보는 심정은 정반대다.

한국이 확진자 1만명 저지선을 지키며 선방하자 국제사회도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 언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때리면서 비교 대상으로 한국의 코로나 진단 능력을 칭찬하는 보도를 쏟아 낸다. "한국과 미국은 똑같이 1월 21일 첫 확진자가 나왔는데 한국이 매일 1만건씩 진단 검사를 하는 동안, 미국은 수백 건도 소화 못해 허덕대는 바람에 코로나 추적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진단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민간 업체들과 그 업체들의 발목을 잡지 않고 뒷받침한 우리 방역 당국의 유연한 대처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코로나 발자취를 뒤쫓았다고 승리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코로나 전투는 감염원을 피해야 이긴다. 대구 신천지 확진자가 수십 명씩 쏟아지기 시작한 2월 19일부터 전 국민이 철저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돌입했다. 시끌벅적했던 번화가가 텅 비었고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썼다. 크고 작은 행사가 모조리 취소됐고 가까운 친구와의 약속도 미뤘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가혹할 만큼 스스로를 가뒀다. 그러는 동안 미국과 유럽 국민은 파티장, 해변가, 스포츠 경기장에서 평소처럼 일상을 즐겼다. 그 차이가 한 달 만의 대반전을 가져왔다.

대구 시민의 희생과 절제도 큰 몫을 했다. 중국 우한에서는 봉쇄를 앞두고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됐는데 대구 시민들은 아무도 막지 않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켰다. 외지에 있는 자식들이 모셔 가려 해도 "(대구에) 얼씬도 마래이. 나도 안 간데이"라고 민폐를 거부했다. 중국 우한 사태는 광둥, 저장, 허난성으로 옮겨 붙었지만 대구 대확산은 경북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

코로나 전투에도 시장 원리 비슷한 것이 작용하며 균형점을 찾아 간다. 코로나 감염원은 확진자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대구 대확산이 시작된 2월 말부터 한국을 찾는 사람이 급감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니 새로운 감염원 유입이 저절로 차단됐다. 코로나 불씨를 옮긴 중국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이 무섭다고 도망가기까지 했다. 이른바 '감염 주도형 방역'이 이뤄진 것이다.

이제 코로나 기압골은 또 한 차례 역전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표값이 몇 배씩 뛰었다. 25일 신규 확진자 100명 중 해외에서 유입된 숫자가 51명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중국발 1차 코로나 파고에 이어 유럽과 미국발 2차 파고가 밀려올 조짐이다. 확진자 순위는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

국무총리는 "종교, 실내 체육, 유흥 시설은 보름 동안 운영을 중단하라"고 강력 권고했다. 서울시는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에 대해 벌금을 300만원 물리고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면 치료비와 방역 비용에 대해 구상권도 청구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국민에게 또 한 번 전투 태세를 갖추라고 독려하고 심지어 엄포까지 놓으면서도 해외에서 유입되는 감염원에 대해서는 무방비라는 점이다. 전 세계 179국이 한국에 대해 입국 차단이나 제한 조치를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일본 한 나라에 대해서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제 와서 유럽과 미국발 입국을 차단하자니 중국에 대해 문을 열어 뒀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싫은 것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잡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도 제 구멍에 맞출 수가 없다. 정부는 개방적이고 투명한 우리 방역 조치가 세계 모범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방적인 모범 방역이라고 우기자니 국경을 활짝 열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코로나 전투 능력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초소 경계를 안 한다. 최전방 경계 포기로 감염원이 쏟아져 들어오면 후방에선 훨씬 힘겨운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다.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민과 방역 당국은 많이 지쳐있다. 정부에 애원한다. 코로나 진단 잘했다고 인정할 테니 제발 입국 문턱을 높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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