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 뉴욕 가먼트 지구

조선일보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입력 2020.03.26 03:14

바지, 스커트, 재킷, 블라우스 같은 의상을 스케치하고 해석하고 정교한 수작업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이 패션 공정이다. 그 결과로 나오는 의류를 전문용어로 '가먼트'라고 부른다. 뉴욕 중심가에 있는 '가먼트 지구(Garment District)'는 옷을 비롯해 단추, 지퍼, 실, 그리고 각종 액세서리를 만드는 공장과 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곳이다〈사진〉. 뉴욕을 대표하는 캘빈 클라인, 도나 캐런, 노마 카말리 등의 브랜드를 포함해 세계 900여 글로벌 패션 기업이 있는 곳. 여기서 만드는 상품 판매액은 1년에 10조원이 넘는다.

뉴욕 가먼트 지구

1850년대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유태인 이민자였다. 임금이 싸고 기술이 좋았던 덕분에 재봉틀 하나만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1960년대 20만, 1970년대에는 40만 인구가 이 지역의 패션 산업에 근무했을 정도로 호황기를 누렸다. 손재주가 좋은 한인들도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런웨이에 소개되면 바로 모방하는 '패스트 패션' 유행과 인건비 등의 문제로 주요 브랜드들이 공장을 중국, 베트남 등으로 옮김에 따라 1980년대 말부터 이 지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의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현 정부 방침과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근래 이 지역은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보통 매년 2월 열리는 '뉴욕 패션 위크'가 끝나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조용한 분위기로 접어드는데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 8주간 중국 공장 생산과 공급이 중단되자 반대 급부로 이곳의 주문량이 폭증한 것이다. 시의 재택근무 방침에 따라 지금은 공장을 가동할 수 없지만 이 상황은 '메이드 인 뉴욕'의 부활을 꿈꾸게 하고 있다. 싸고 빠른 유행만 찾던 경향에서 패션의 기능적 본질과 지속적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뉴욕에서 패션은 문화이고 삶을 표현하는 스타일이자 도시의 이미지다.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뉴욕 패션의 백스테이지가 산업에 긍정적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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