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기업인 대표가 도지사에게 꾸지람 듣는 나라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15 | 수정 2020.03.27 13:33

'코로나 사태' 위기 기업들 "법인세 인하" 의견 내자 "국민은 굶어 죽는데…" 비난
기업 지키려면 '반기업' 고쳐야

윤영신 논설위원
윤영신 논설위원

얼마 전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난데없이 손경식 경총(經總) 회장을 비난했다. 손 회장은 이 지사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 지사가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손 회장은 경총 소속 4000여 기업을 대표해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 생존을 위해 "법인세 인하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정부에 건의했을 뿐이다. 손 회장의 의견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밝히면 될 일인데 경기도 지사가 손 회장을 쏘아붙였다. 이 지사는 "(코로나 사태로) 국민들이 죽어가는 이 와중에 (기업은) 법인세 깎아 달라며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다" 고 했다. "국민들이 쓸 돈이 없어 '병들어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고 하는 처참한 상황에 한몫 챙기겠다는 경총, 정말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국민이 죽지 않게 하는 것은 방역 문제다. 지자체가 대처할 일이다. 법인세 인하는 경제정책 문제다. 경제 부처가 판단할 일이다. 그런데 직접 당사자가 아닌 도지사가 나서서 '기업'에 '가난한 국민'을 갖다 붙여 둘을 편 가르기 하고 '기업=나쁜 집단'인 것처럼 선동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다른 나라들은 기업 살리기를 국정 최우선 목표로 정해 전력을 쏟고 있다. 법인세 인하는 기본이다. 미·중 두 강대국이 경제 전쟁을 벌이는 것도 자국 기업을 위해서다. 국민을 위한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인데 그 일자리를 기업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기업을 함부로 대한다. 법인세를 올려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근로시간을 강제로 단축해 생산력을 떨어뜨리고, 기업인 형사처벌 규정을 대폭 늘렸다.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기업 하기에 정말 거지 같은 세상을 만들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자 기업들이 법인세부터 제자리로 돌리자고 한 것인데 말을 꺼내기 무섭게 '찍 소리 말라'는 엄포가 날아왔다.

이 지사가 말한 '국민이 굶어 죽을 판'은 누가 만들었나. 정부인가, 기업인가.

이 정권은 초지일관 기업을 적대시하고 천대(賤待)했다. 정권 초기 어느 장관이 "재벌 혼내주고 왔다"고 자랑했는데 이 한마디에 그들의 기업관이 담겨 있다. 어제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위기를 틈타 부당하게 인원을 줄이는 기업은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지금 기업들은 코로나 쇼크로 자금 유동성 위기에 처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기업이 생존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정부 허락 받으란 얘긴가. 그러다 기업이 도산하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되살려주겠다는 건가. 그 재정은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인가.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 중 이렇게 정치권력이 기업을 포로 다루듯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또 있나.

이 정부의 기업관은 출범 1년 6개월 후쯤 대통령 연설에 명료하게 나온다. 이념적 커밍아웃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연설문에는 주어부터 '대한민국'이나 '우리나라'가 없다. 이 정부 이전까지의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투였다.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 집단에 집중되었다. 성장할수록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기업은 스스로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대기업을 청산해야 할 착취 세력으로 규정했다. 40~50년 전 운동권 필독서에 나오는 매판자본론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정권의 기업관은 그 시점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내놓는 정책마다 기업 발목을 잡고 참담한 실패를 낳는다. 그래놓고도 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변화 자체를 꺼린다. 그들이 그토록 비난해온 '보수'보다 더 보수적이다. 이 불치병을 고치지 않으면 기업이 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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