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민 83만명 향해 '딴소리하면 돈 안 줘' 이게 나라인가

조선일보
입력 2020.03.26 03:24

이재명 경기 지사가 광역 자치단체로선 처음으로 전체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의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무려 1조300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드는 일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부천 시장이 "피해 소상공인에게 400만원씩 주는 게 더 낫다"고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이 지사는 '반대하는 시군은 지급 대상에서 빼겠다'고 했다. 논란이 큰 정책을 시행하면서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해당 지역 시민 83만명을 지원 대상에서 빼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군사 정부 시절에도 없었던 폭력이다. 국민 세금을 제 돈인 양 생각하기에 이렇게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폭력적 협박으로 다른 의견을 봉쇄하는 것, 그로 인한 피해자가 수십만명이어도 상관없다는 것, 결국 부천시장이 돈을 못 받은 시민들에게 비난받을 것이란 계산 등이 모두 혀를 차게 한다.

여권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이 지사는 코로나 사태를 정치 인기를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려 전력을 다해왔다. 한밤에 경찰과 함께 신천지 교주 거처로 달려가는 등의 활동으로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박원순 서울시장도 나섰다. 두 사람이 함께 수도권 신천지 신도 환자를 찾아낸다며 7만여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한다고도 했다. 새로 찾아낸 확진자는 2명이었다. 이 지사는 지난달 북한에 마스크 120만장, 코로나 진단 키트 1만개, 소독약 등 12억원 상당을 지원키로 했다가 국내 상황이 악화되자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정치인이 큰 사태를 기회로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적절해야 국민에게 해가 되지 않고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 지사가 1조3000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쓰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다른 의견이 하나 나왔다고 시민 83만명을 배제하겠다는 것을 보면서 그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표를 사는 포퓰리즘이 당연한듯 횡행하는 세상이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기로에 놓인 저소득층,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각 지자체가 경쟁하듯 중구난방으로 현금을 살포하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에 대해 "실제 사용처가 없는 상태에서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부가 지자체별 재난 구호금 경쟁에 제동을 걸고 정리된 방침을 정해줘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