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취중잡담] 몰락하던 아버지 회사, 의대 가려던 아들이 이렇게 살렸다

입력 2020.03.26 06:00

미국 USC 유학 시절 큰 사고 후 골프 입문
아버지 수술로 가업 승계, 골프 용품 업체로 변신
비거리 늘려주는 밧줄연습기 4개월만 2만개 판매

좋은 가업 승계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어려움을 겪던 아버지의 작은 의류업체를 이어 받아, 골프용품 전문업체로 탈바꿈시킨 ‘루키루키’(ROOKIE ROOKIE)의 김동하 대표를 만났다.

◇아버지 수술로 가업 이어받아

미국 USC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의학대학원 진학이 목표였다. 2008년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왼쪽 전체에 마비가 올 정도로 큰 부상이었어요. 오래 재활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몸 회복에 좋다면서 골프를 권하더라고요."

김동하 루키루키 대표 /루키루키 제공
김동하 루키루키 대표 /루키루키 제공
골프에 푹 빠지면서 진로를 틀어, 대학 졸업 후 미국의 골프 관련 회사에 들어갔다. 골프장을 만드는 부동산 개발회사 ‘Jamieson & Mills Property Company’에서 4년 일했다. "구매담당 매니저를 맡았습니다. 타이틀리스트, 테일러메이드 등 대기업과 거래했죠. 회사가 짓는 골프장에 각종 용품을 넣는 일을 했습니다."

구매 담당자는 회사의 비용 부담을 떨어트려야 할 책임이 있다. "골프공을 대량 구매할 일이 있었는데요. 대만 업체를 찾아내 생산을 의뢰해서 단가를 50% 낮춘 적이 있습니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김동하 대표 /루키루키 제공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김동하 대표 /루키루키 제공
2017년 초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았다. 미련없이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가 하던 기업을 물려받았다. 오랜 적자에 시달리던 영세 의류업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하다, 골프용품으로 주력품목을 바꾸기로 했다.

당장 제품 개발할 여력은 안돼 골프용품 유통을 했다. 바로 극적인 반전이 오지는 않았다. "남의 물건 팔아서는 많은 이익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어설프게 의류 유통을 다시 시작했다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국 제조 업자가 돈만 받고 사라져 그대로 돈을 날린 거죠."

스윙로프 제품 모습 /루키루키 제공
스윙로프 제품 모습 /루키루키 제공
◇회사 성장에 날개 단 스윙로프

내 제품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퍼들이 브랜드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골프 장갑 제작에 도전했다. 고급 브랜드가 쓰는 천연 양가죽과 라이크라 소재를 쓰면서, 3장에 9900원을 받았다. "기획, 해외 생산, 유통을 모두 자체적으로 해서 가격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좋은 소재 제품을 싸게 팔았더니 시장 반응이 오더군요. 지금까지 5만 세트 이상 팔았습니다."

스윙로프로 연습하는 모습 /루키루키 제공
스윙로프로 연습하는 모습 /루키루키 제공
골프장갑 성공에 자신감을 갖고 만든 게 스윙 연습장비 ‘스윙로프’(http://bit.ly/39hHziK)다. 미국 PGA 투어 프로와 코치들이 집안에서 연습하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는 밧줄 훈련을 상품화한 것이다. "집 안에서 골프 클럽을 휘둘렀다가는 천장이나 가구에 일을 낼 수 있습니다. 클럽 대용으로 밧줄을 추천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무게감이 적당해서 클럽과 비슷한 연습 효과를 내거든요. 특히 스윙 스피드를 올리는 데는 밧줄 연습이 낫습니다. 몸통 회전을 느끼는 데 좋다고 합니다."

다만 밧줄은 손잡이가 없어서, 오래 연습하면 손을 다칠 수 있다. "손잡이를 장착하고, 밧줄 재질도 스윙 연습에 최적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김동하 대표 /루키루키 제공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김동하 대표 /루키루키 제공
시장조사부터 했다. 연습프로와 아마추어 골퍼들을 만나 필요한 기능을 설문했다. 수요를 반영해서 무게감과 탄성이 가장 좋은 3중 꼬임 탄소섬유로 밧줄을 제작했다. 손잡이 그립은 대만의 배드민턴용품 업체와 기술제휴해서 만들고, 로프 가운데 노란 스펀지 공을 달았다. 공이 지나가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내 스윙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실용신안 등 5개의 지적저작권을 취득하고 시제품을 테스트했다. "백스윙 정점에서 다운스윙을 할 때 손이 먼저 내려오다가 공이 임팩트되는 최저점에서 밧줄이 쫙 펴지는 효과를 구현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느낌이 정확하게 나더군요."

제조는 어렵사리 모신 장인들에게 수제작으로 맡긴다. 품질 관리를 위해서다. 출시 4개월 만에 온라인몰(http://bit.ly/39hHziK) 등에서 2만 개를 팔았다. '체중이동하는 법을 알게 됐다' '비거리가 얼마 늘었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미국 장타대회 선수와 PGA코치 자문을 얻어서 만든 자세교정기 등 다른 연습기도 내놨다. 아마존 등을 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 수출도 한다. "해외 판매량이 1만개를 넘었습니다. 본격적인 수출을 기획 중에 있습니다."

◇골프용품 ‘카테고리 킬러’ 목표

-제품 전략의 핵심이 뭔가요.
"경영학에 ‘플러스 앤 마이너스’ 전략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더하고요. 가격, 쓸모없는 기능, 거품 등은 빼는 거죠. 여기에 충실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합니다."

스윙로프를 만드는 장인들 /루키루키 제공
스윙로프를 만드는 장인들 /루키루키 제공
-어떤 CEO를 지향하나요.
"직원들에게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 지침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앉아서 명령하는 CEO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일하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전통적인 제조업이 몰락하고 IT 위주로 스타트업계가 커지면서, 단기간에 사용자를 확보한 뒤 엑시트(지분 매각)하는 것만 생각하는 창업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기에 규모를 키우려고 투자 받는 데 급급해 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기업 일구는 건 농사 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차근차근 능력을 키워서 큰 수확물이 나올 때까지 인내하고 노력하는 거죠. 기업을 큰 빈 깡통처럼 키우는 게 아니라, 내실 있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오래다닐 수 있는 기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스윙로프를 만드는 장인 /루키루키 제공
스윙로프를 만드는 장인 /루키루키 제공
-제조업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어쩌면 제조업의 ‘몰락’이란 표현 자체가 새로운 기회를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장이 몰락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경쟁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하니까요. 레드오션이 다시 블루오션이 되는 거죠. 나만의 기술과 마케팅 기법만 있르면, 어려운 시장일수록 시장 전체를 독점할 수 있는 ‘카테고리 킬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카테고리 킬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골프용품은 기존 업체들의 벽이 매우 높은 업종입니다. 그런데 그 벽이 도전 정신을 자극합니다. 한 번 자리 잡는 게 어려울 뿐, 안착만 하면 의류 등 다른 분야로 진출이 용이합니다. 2~3개월 주기로 신제품을 내면서 업계에 제대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글로벌 토털 골프용품 업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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