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가 청와대 불상 탓?...원위치 고증할 발굴 시작

입력 2020.03.25 12:57 | 수정 2020.03.25 15:30

석굴암 본존불 닮아 '미남불'로 불리는 불상
1912년 조선 총독이 경주시찰 갔다 경무대로 옮겨
괴담 많은 불상 원위치로 추정되는 이거사터 발굴 시작
시민단체들 "원래 있던 경주로 불상 옮겨야"
문화재청 "이전 논의할 단계는 아냐"

107년 전 고향을 떠난 ‘청와대 불상’의 출생지를 밝힐 결정적 증거가 나올까. 청와대 경내에 있는 보물 1977호 ‘경주 방형대좌(方形臺座) 석조여래좌상’의 원위치를 고증할 수 있는 본격 발굴이 시작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위원회(위원장 이청규)가 청와대 불상 원위치로 추정되는 경주 이거사(移車寺)터 정밀 발굴 조사 안건을 심의해 가결했다고 25일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달 끝난 시굴조사 결과 이거사터 금당 기단 하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과 통일신라 건물터,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우물 등을 확인했다”며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경주시 도지동 3-1번지 일원 1000㎡를 정밀 발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발굴비는 2억원. 2019년도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추진되며, 조사는 시굴을 진행했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맡는다.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사연 많은 기구한 불상… 타향살이 끝낼까

청와대 불상은 9세기 통일신라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닮아 ‘미남불(美男佛)’로 통한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 너비 86㎝.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눈꼬리, 굳게 다문 입술이 돋보인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풍채와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 통일신라 조각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원래 경주에 있던 이 석불이 권력의 심장부 청와대에 앉은 데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사연은 10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1912년 경주 시찰을 갔다가 이 잘생긴 불상을 눈여겨 봤다. 이듬해 불상은 서울 남산 총독 관저로 옮겨졌고, 1939년 총독 관저가 경무대(청와대 이전 명칭)로 이전한 이후 현재까지 청와대 경내에 남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엔 ‘석불 괴담’도 나돌았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서해 페리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대형 재난이 빈발하자 시중에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청와대 불상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재앙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급기야 청와대가 이를 잠재우기 위해 출입기자단에 불상을 공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관저 뒤편을 산책하던 중 “이 불상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보라”고 지시한 후 서울시 유형문화재에서 국가 보물로 신분이 상승됐다.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문화재청, “이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경주 지역 시민단체는 “청와대 불상을 하루빨리 고향인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불교계는 “불상의 역사적 가치가 조명되고 원위치에 대한 연구를 거친 후에 옮겨도 늦지 않다”는 입장. 문제는 불상의 정확한 출토지가 경주 내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8년 일제강점기 문헌인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에서 불상 원위치가 이거사터임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되면서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신라사적고’에 따르면 도지리(道只里) 이거사터 항목에 “다이쇼(大正) 2년(1913년) 중에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내용이 있다. “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다이쇼 2년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후광이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 신라사적고는 경주 금관총 발굴에 관여했고 1933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사오(諸鹿央雄)가 1916년 출판한 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문헌만으로 지금의 이거사터가 기록에 나오는 장소이자 불상의 원위치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일단 발굴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설령 그 자리가 맞다는 결정적 근거가 나와도 섣불리 이전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이거사터 일대가 사유지인데다 소유자 일부는 땅을 팔 의사가 전혀 없고, 너무 외진 곳이라 불상을 조성하기 쉬운 환경도 아니다. 주변이 정비되고 완벽히 관리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이전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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