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도 휴대폰 추적… 코로나가 불러들인 '빅브러더'

조선일보
입력 2020.03.25 03:00

2년전 개인정보보호법 만든 EU, 코로나 방역 강화 핑계로 국민 사생활 침해 눈감아주기로
"국가가 한번 '국민통제 맛' 보면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

유럽연합 정보보호이사회(EDPB) 위원장 안드레아 옐리네크는 20일 "우리의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이 코로나 대유행 국면에서 방역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코로나 확진자·사망자가 급증하자 방역을 위한 개인 사생활 침해를 눈감아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EDPB 발표 다음 날 독일·이탈리아는 확진자와 의심 환자의 휴대폰을 추적해 과거 동선을 파악하고 격리 상태를 실시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이용을 극도로 제한한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2년 전 세계 최초로 시행할 정도로 사생활 침해에 민감한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방역을 위해 개인 사생활 침해를 불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무차별 개인 정보 수집과 사용 관행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던 서방국도 최근에는 개인 정보 수집에 적극적이다. '코로나 빅브러더'가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행이 코로나 종식 후에도 '뉴 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국이 코로나 방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생활 침해 수단은 휴대폰 추적이다. 이스라엘은 아예 정보기관을 끌어들여 대(對)테러 활동 수준의 휴대폰 감시 체계를 가동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정보기관 신베트가 확진자와 의심 환자의 휴대폰 정보를 수집하도록 16일 긴급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에서는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5일 내에 확진자 동선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23일 내렸다.

홍콩 정부의 정보통신 책임자가 방송에 출연해 외국 입국자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는 GPS 전자팔찌를 보여주고 있다.
GPS팔찌 채우는 홍콩 - 홍콩 정부의 정보통신 책임자가 방송에 출연해 외국 입국자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는 GPS 전자팔찌를 보여주고 있다. /홍콩 라디오텔레비전
홍콩 정부는 외국 입국자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는 GPS 전자팔찌를 도입했다. 홍콩 입국자는 기내에서 전자팔찌 착용에 동의해야 입국할 수 있다. 태국은 공항에서 입국자에게 위치 추적이 가능한 유심칩을 휴대폰에 장착하게 해 이동 경로를 추적한다. 미국 백악관은 최근 구글·페이스북 등 거대 IT기업에 모든 미국인의 위치 정보를 익명 처리해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국민의 이동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건강 정보 수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가 달린 드론을 고층 아파트 사이로 띄워 주민 체온을 측정해, 의심 환자를 가려낸다. 저장성·쓰촨성 등의 주민들은 이동할 때 검역 정보가 담긴 개인 휴대폰 QR 코드를 지니고, 공안(경찰)의 스캔에 응해야 한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다. 각국의 사생활 침해 활동은 코로나 이후에도 관성적으로 이어져 감시 세계를 만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포린폴리시(FP)는 20일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 했다. 국가가 한번 '국민 통제의 맛'을 보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FP에 "코로나는 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 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20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일부 국가에선 생체 측정 방식의 감시 시스템을 유지할 위험이 있다"며 "인류가 전체주의 감시 세계로 갈 것인가,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유지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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