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티켓·셔츠… 구겐하임 새 얼굴 제가 만들었죠

조선일보
입력 2020.03.25 03:00

[정재은]
세계적인 뉴욕 미술관 '구겐하임' 브랜드 재정비한 한국인 디렉터
세계유산인 건축의 철학 살려 60주년 특별 로고 등 디자인 주도

"'구겐하임다움' 제대로 느끼도록 미술관 안의 보물 찾아냈을 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 기념품 토트백을 멘 정재은 디렉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 기념품 토트백을 멘 정재은 디렉터. 가방의 문구는 초대 관장 힐라 리베이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영혼의 사원'을 지어달라며 했던 말이다. /조인원 기자
디자이너 정재은(40)은 'I want a temple of spirit, a monument'(나는 영혼의 사원, 기념비를 원합니다)라고 쓰인 토트백을 메고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그가 그래픽디자인 디렉터로 있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지난해 설립 60주년을 맞아 판매하기 시작한 가방이다. 문구는 설립자 솔로몬 R. 구겐하임을 예술의 세계로 이끈 초대 관장 힐라 리베이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에게 미술관 설계를 맡기며 당부한 말이다. 예술을 통해 정신의 고양을 체험하는 사원(寺院)으로 현대 건축사의 기념비를 세우려는 뜻이 담겨 있다.

미술관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이 가방은 정재은이 2018년 6월 구겐하임에 부임한 이후 디렉터로서 선보인 결과물 중 하나다. 서울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의 잡지사·갤러리에서 일했던 그는 2009년 뉴욕으로 건너가 브루클린 미술관에 이어 구겐하임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았다. 지금은 입장권부터 후원 회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미술관의 시각언어를 재정비하는 작업을 지휘한다. 정재은은 "미술관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통해 관람객들이 '구겐하임다움'을 시각적으로 일관되게 느끼도록 하는 일"이라고 했다.

구겐하임다움의 원천으로서 그는 라이트의 건축에 주목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건축은 구겐하임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지만 정작 구겐하임이란 브랜드를 강조하는 디자인 소재로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었다. "건축이 유명하다는데 미술관이 그간 내놓은 디자인을 보면 전경 사진을 쓰는 정도였어요. 이곳에서 하게 될 작업은 항상 건축을 염두에 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처음 석 달은 여러 부서 사람들을 만나며 무엇부터 바꿔야 할지 논의했다.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한 과제가 회원 대상 각종 물품·양식을 아우르는 '멤버십 아이덴티티' 개편이다. 정재은은 "후원은 미술관 수익과도 직결되는데 회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유명한 나선형 복도를 비롯해 건물에서 가장 특징적인 장소 9곳을 아이콘처럼 추상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을 넣은 회원용 토트백, 회원 카드, 티셔츠 등은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뚜렷하게 구겐하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재은은 "기하학적이고 순수한 형태를 즐겨 사용한 라이트 건축의 원리를 드러내고자 했다"면서 "전적으로 디자인만의 효과라고 하긴 어렵지만 지난해 4월 개편 이후 회원이 40% 정도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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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 지침인 '영혼의 사원' 문구를 넣은 관람 안내서. 60주년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 건물 곳곳을 아이콘처럼 만들어 넣은 새 회원용 토트백(왼쪽부터). /David Heald·David Heald·Allison Chipak
건축이란 주제를 이후에도 미술관 구석구석에 다양한 형태로 적용하고 있다. 입장권도 건물 곳곳을 촬영한 컬러 사진을 넣어 새로 만들었다. 밋밋한 예전 입장권을 버리고 가던 관람객들이 새 입장권을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건물의 설계 지침인 '영혼의 사원' 문구는 관람 가이드북의 표지를 장식했고 기념품점에서 파는 토트백에도 들어갔다. "관람 안내, 기념품 판매 같은 분야를 칼로 자르듯 나누기보다 디자인이 전체적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했죠."

60주년 특별 로고도 그가 주도해 만들었다. '60'이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나 로비에서 한 번쯤 올려다보는 둥근 천창의 기하학적 비례를 따온 것이다. 정재은은 "미술관 안에 숨은 보물이 많다"면서 "그걸 찾아내 디자인으로 전달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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