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암담할 때… 숲의 황홀경에 빠져보라

조선일보
입력 2020.03.21 03:00

25년간 우울증 앓아온 저자, 자연에서 마음 치유한 사연 담아

세로토닌 분비 촉진하는 자연… 스트레스·정신적 피로 해소돼
나뭇잎·깃털·조약돌 수집도 도움

'야생의 위로'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 지음|신소희 옮김|심심|272쪽|1만8900원

봄은 힘이 세다. 고운 잿빛 털로 덮인 강아지처럼 보송보송해 '버들강아지'라 불리는 버드나무 수꽃이 살을 에는 강풍과 무자비한 가랑비를 이기고 끝끝내 머리를 내민다. 진정한 봄이 왔다는 첫 신호다.

3월, 영국 서퍽 지역엔 자엽꽃자두가 만발하고 가시자두꽃이 피어나지만 저자는 봄 소식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울증 때문이다. '난 무가치한 인간이야.' 생각의 블랙홀에 빠져들다 차를 몰고 나선다. '어느 다리가 가장 높고 효율적일까?' 생을 끝내고 싶은 욕망에 휘둘려 차를 몰아가는데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나는 조그만 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면의 참담한 소음을 가라앉힌다. 나무들, 푸르름, 위로. 파국을 향해 폭주하던 소란이 멈추고, 그는 차를 집으로 돌린다.

영국 박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심각한 우울 증상을 겪으며 만난 자연의 위안에 대해 1년간 적어간 일기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고 첫 문장을 시작한 저자는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고 썼다.

보랏빛 꽃 만발한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에너지를 만끽하는 여성.
보랏빛 꽃 만발한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에너지를 만끽하는 여성. 저자는 "세상이 혼란스럽고 망가진 곳처럼 보이고 암담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나는 집에서 나와 나무들이 있는 곳까지 5분동안 걸었다"고 썼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과학적 근거도 있다. 2007년 마드리드대학교와 노르웨이 생명대학교의 합동 연구서에 따르면 자연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정신적 피로가 해소돼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한다. 식물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생성하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면역계와 순환계 등에도 일부 같은 작용을 한다. 자연과의 접촉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우울증을 완화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산림욕이 도움이 되는 이유다. 숲으로 산책을 나가 나뭇잎사귀나 새의 깃털, 조약돌 등을 주워오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된다.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일시적 흥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자였던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검은지빠귀
4월, 저자는 정원에 찾아온 검은지빠귀 노랫소리를 듣는다. 서정적이고 덧없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현란한 색의 불꽃을 터뜨린다. 행복하다. 엑서터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완화하려면 주변 경관에 새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저자는 정원에서 점점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정원 일은 흙을 만지면서 하는 요가와도 같아서 만족스럽고 은근히 기분을 달래줄 뿐만 아니라 우울한 생각을 쫓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문득 하늘로 눈을 돌렸을 때 보이는 것이 있다. 올해의 첫 번째 제비다. 저 제비는 남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여행해 왔다. 한 달 동안 9000㎞를 이동했으니 하루에 약 300㎞를 날아온 셈이다. 저렇게 작은 새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업이다. 저자는 쓴다. "제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듯이 나 역시 또 한 번의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나는 안마당에 앉은 채 잠시 조용히 운다."

솔직한 고백, 정교한 문장, 아름다운 꽃 사진과 일러스트가 위안이 되는 책이다. 역병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느라 자연과 햇살이 그리운 요즘은 더욱 그렇다. 7월,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숲에서 강렬한 환희를 느끼며 저자는 '지금 이 기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거실 창밖으로 새를 관찰한 것은 우울증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건 말하자면 이부프로펜 한 알로 부러진 다리의 통증을 가라앉히려는 것과 같았다. 그에 비교하면 숲의 효력은 아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두 달간 창밖 풍경만으로 애써 '코로나 블루'를 달래 온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뼛속까지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봄이 부른다. 주말엔 홀로 숲으로 나가볼까. 단, 마스크는 쓰고. 원제 The Wild Re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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