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해서 언니들도 반했다, 할매입맛 '봄 쑥국'

조선일보
입력 2020.03.17 03:00

[香의 절정, 쑥]
멸치 육수에 된장만 풀어 본연의 향 살린 전라도 쑥국
경상도는 도다리 넣어 탕처럼

"불필요한 재료 빼는 게 중요… 떡·빵·케이크에도 잘 어울려"
칼로리 낮아 다이어트에 탁월

쑥은 봄의 향기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혜원 역)는 봄이 오자 쑥과 아카시아꽃을 튀겨 바사삭 소리를 내며 먹는다. 영화에서처럼 쑥튀김은 쑥을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찬물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탈탈 털어 튀김 가루를 입혀 튀기기만 하면 된다. 튀김옷보다 쑥이 더 많이 보여야 맛있다.

쑥은 할머니의 재료다. 어릴 적 봄이 되면 할머니는 시장에서 쑥 한 바구니를 사와 쑥국을 끓였다. 그땐 약초 같은 향이 싫었지만 한 그릇 싹 비우면 "아유, 잘 먹는다"며 칭찬을 받았다. 30년이 지나 엄마가 할머니 나이가 되자 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쑥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을 '할매입맛'이라고 부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쑥국

"초등학교 때까지 해남에서 살았어요. 봄 되면 여동생과 냇가, 산을 돌아다니며 쑥을 캤어요. 그 쑥을 할머니는 물에 한 번 데친 후 멸치 육수에 된장 풀어 쑥국을 끓여주셨지요. '쑥향을 해치니 된장 외엔 아무것도 넣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며. 쑥전도 쑥과 찹쌀가루만으로 기름에 지져냈어요."

된장과 쑥만으로 맛을 낸 서울 역삼동 해남천일관의 '된장쑥국'.
봄은 쑥과 함께 온다. 쑥향을 온전히 즐기려면 이것저것 넣지 않는 게 좋다. 된장과 쑥만으로 맛을 낸 서울 역삼동 해남천일관의 '된장쑥국'. 뒤로 도다리쑥국과 쑥전이 보인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1920년대 전라도 해남에서 '천일식당'을 운영하던 외할머니 요리법을 물려받아 서울 역삼동에서 3대째 식당을 하는 이화영 해남천일관 대표의 '봄 기억'이다. 이 대표는 이렇게 끓인 '된장쑥국'에 밥을 말아 5분 정도 기다렸다가 고추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었다고 한다. 고추김치는 이 집 대표 반찬으로 말린 무와 소금에 삭힌 풋고추를 고춧가루와 토하젓에 버무린 것. 한 입 먹어보니 고추김치의 꼬들하면서도 알싸한 시원함이 '된장쑥국'의 향과 잘 어우러졌다. 이 대표는 "쑥과 밥이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럽다 보니 아이들도 잘 먹는다"고 했다.

옆 동네 경상도의 봄은 '도다리쑥국'을 먹을 때 온다. 통영이 대표적이다. 시인 박준도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말했다. "나는 통영으로 내려가는 내내 어떤 음식으로 그 한 끼를 채워야 할지 고민했다. 만약 봄이었다면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향 좋은 도다리쑥국을 먹었으리라."

도다리쑥국은 사실 '탕'이다. 손질한 도다리를 토막 내 무, 대파, 다시마를 넣어 우려낸 육수에 넣고 끓인다. 간은 땡초와 소금으로만 하고, 도다리가 익으면 쑥을 넣고 바로 불을 끈다. 맑은 도다리 지리에 쑥향을 더하는 방식이다. 도다리탕만으로도 시원한데, 여기에 쑥까지 넣었으니 숙취에 그만이다. 통영에서는 '분소식당'이 유명하지만 서호시장 어딜 가도 기본 이상은 한다. 서울은 을지로 '충무집'이 유명하다.

◇코로나 비만엔 '쑥' 다이어트

쑥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잘 자란다. 반 고흐가 사랑한 술 압생트도 쑥과 아니스, 회향으로 만들었다. 떡뿐 아니라 빵, 케이크 모두 잘 어울린다. 이때도 중요한 건 "불필요한 재료를 더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 '태맥산맥'에서도 "쑥떡이라고 쪄 놓으면 말이 떡이지, 쌀가루 기운으로 겨우 엉긴 쑥 덩어리였다. 그것을 절구통에 넣고 쳐대면 쌀의 찰기가 좀 더 살아나고 쑥이 몽그라지면서 떡 모양새가 되었다"고 나온다.

쑥과 쫄깃한 빵이 팥과 조화를 이루는 대구 근대골목단팥빵의 '쑥아빵'(왼쪽). 오른쪽은 찹쌀과 쑥, 천일염, 소량의 설탕만으로 만든 '쑥떡'.
쑥과 쫄깃한 빵이 팥과 조화를 이루는 대구 근대골목단팥빵의 '쑥아빵'(왼쪽). 오른쪽은 찹쌀과 쑥, 천일염, 소량의 설탕만으로 만든 '쑥떡'. 콩고물에 조물조물 묻혀 먹는다. /마켓컬리·남해중현떡집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사람들은 쑥과 쌀로만 만든 쑥떡으로 설을 맞이했다. 그런데 쑥떡은 이렇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하나 더 첨가한다면 '콩고물'이다. 쑥과 찹쌀로 찐 인절미를 한입 크기로 잘라 콩고물에 조물조물 묻혀 먹는다. '남해중현떡집'이 유명하다.

빵도 치아바타처럼 맛이 강하지 않아야 쑥과 어우러진다. 서울 합정역 부근에 있는 야미요밀 '쑥치아바타'는 줄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쑥이 많이 들었다. 딸기잼도 안 바르고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대구근대골목단팥빵의 '쑥아빵'은 쑥과 빵, 달지 않은 단팥의 조화가 그만이다.

쑥은 다이어트 음식이다. 칼로리도 낮고 쑥에 있는 클로로필 성분이 지방 대사를 높여 살이 빠지도록 도와준다. 쑥은 '코로나 비만'에 걸린 사람들이 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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