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정신 승리' 정책의 종말

입력 2020.03.12 03:15

'생산 능력 충분하다'는 엉터리 장담 깨닫는 데 한 달이나 걸려
5년·10년 뒤 후회할 정책 수두룩… 근거없는 정치논리 재앙 불 보듯

김덕한 산업1부장
김덕한 산업1부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3일 "국내 경제활동인구 2800만 명이 하루에 한 장씩 마스크를 쓴다고 생각하면 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정부 측 인사의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진단이었다. 문제는 이런 진단이 나오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는 점이다.

국내 마스크 생산 능력이 하루 1000만장 수준이니 미리 대비해 비축해 뒀거나, 정부가 개입해 생산시설을 늘릴 능력을 갖췄거나, 수입해 올 방도라도 찾지 못한다면 마스크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는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닫고서야 정부는 '1인당 1주일에 두 장'이라는 수요 제한 정책을 내놓았고, 그마저도 난관이 많다는 걸 국민이 인식하게 됐다.

과학적 경제논리의 반대편엔 정치논리가 있다. 어느 논리가 이길 것인지는 명백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실장의 고백이 나오기 며칠 전까지 "마스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생산 능력이 충분한'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수입상들은 1월 말부터 마스크를 싹쓸이해 가기 시작했다. 중국 상인들의 경제논리 앞에서 우리 정부의 '정신 승리' 논리는 무참히 깨졌다.

'하루 만들어 하루 쓰고 있는' 마스크는 수요 공급의 원리를 곧바로 보여준다. 그래서 한 달 만에라도 대책을 세울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5년 10년 후에야 '내가 쓸 마스크가 없다'는 절박한 사실을 깨닫게 할 정책을 이 정부는 쏟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여 뒤인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시켰고 7000억원을 들여 보수를 끝낸 월성1호기마저 폐로(廃爐)시키는 탈(脫)원전 정책을 이어갔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대한민국'이 됐는지는 계산하기 어렵지만, 얼마나 경제적 손실이 커지고 있는지는 마스크 수급과 비슷하게 곧바로 계산이 가능하다.

폐로시키려는 월성1호기 하나만을 태양광으로 대체하는 데에도 대략 100㎢의 땅이 필요하다. 여의도 34배쯤 된다. 한전이 2030년까지 세운 재생에너지 목표량 13.2GW를 태양광으로 채우려면 적어도 994.3㎢의 땅이 필요하다. 서울의 1.6배다. 이런 땅이 없으니 무자비한 산림 훼손이 일어나고 저수지 위에까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코미디가 벌어지는 것이다. 목표를 우격다짐으로 채운다고 해도 태양광 발전 비용은 원전의 3배에 달한다. 이런 부담이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참혹하게 떨어뜨리고 나라 살림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임기까지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해 11월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예산안의 기본이 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대로 답하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 엘리트 경제 관료였던 그가 대답을 못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은 이 정부의 주먹구구식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모습 같았다. 이 수석이 말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3.8%(경상 기준)는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올해 현금 살포성 복지 지출은 54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48조원보다 훨씬 늘었다.

경제 논리가 바탕이 되지 않는 '정신 승리적 숫자'는 힘이 없다. 숫자의 힘이 없어지면 모든 계획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세계 일류 기업을 573개에서 1200개로 늘리겠다'는 식의 산업정책도 비슷하다. 이런 숫자 위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늘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건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쓸데없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현명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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