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안철수의 땀범벅 의료복… '쇼'라도 아름다운 이유

조선일보
입력 2020.03.10 03:00

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연녹색 티가 어깨부터 배 부위까지 짙은 청록으로 바뀌었다. 땀이 만들어 낸 천연 염색이다. 지난 1일부터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모습. 방호복에 속옷은 땀범벅이고, 얼굴엔 보호 장비를 착용한 자국이 선명했다〈사진〉.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마치 재난영화 속 한 장면 같던 '의사 안철수'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재난 현장으로 달려간 사회 지도층 인사로 화제가 된 건 미국 9·11 테러 현장을 누비던 루돌프 줄리아니 당시 뉴욕시장이다. 발발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집무실에서 뛰쳐나온 그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시민을 안정시키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후 뉴욕소방국(FDNY)이라 적힌 남색 의상에 보호 마스크를 쓰며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잔해와 진흙에 검은 운동화는 뿌옇게 바랬고, 남색 상의는 희뿌연 먼지로 뒤덮였다. 전립선암으로 투병하며 항암제에 의존하던 그였기에 진심을 담은 것이라 평가받기 충분했다. 당시 보여준 지도력으로 그해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올랐다.

지난 1일부터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모습. 방호복에 속옷은 땀범벅이고, 얼굴엔 보호 장비를 착용한 자국이 선명했다
재난 현장에 발 벗고 나섰지만 '정치용 사진 찍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호되게 혼난 경우도 있다. 지난해 오타와-가티노 지역 홍수 피해 현장을 찾은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제방용 모래주머니 만드는 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다 "쇼하느라 당장 안위가 급한 이들을 기다리게 한다"는 한 시민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여느 자원봉사자들처럼 모래가 잔뜩 묻은 트뤼도의 장화와 청바지는 '사진 쇼'에 묻혀버렸다.

'재난 의복' 하면 생각나는 건 TV 속보 화면과 함께 공직자와 공무원들이 입고 나타나는 노란색 점퍼다. 공식 명칭은 '민방위복'. 비상시 민간 구호와 주민 대피 업무 등을 활발히 하기 위해 눈에 잘 띄는 색으로 지정했다. 재난 때 언제든 입고 가야 하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 사무실엔 항상 비치돼 있다고 한다.

옷만 바꿔 입는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 보였던 이 민방위 점퍼를 수퍼맨 슈트처럼 보이게 한 이가 있다. 바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다. "1시간보다는 더 잔다"는 이야기로 안타까움을 자아낸 그는 머리 감는 시간도 아끼겠다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그사이 흰머리는 더 늘어났고, 핏기 잃은 입술에 볼은 나날이 패어갔다. 쇼가 아닌, 진짜 땀내로 가득한 노동복은 그 어떤 옷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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