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의사, 부산 환자에 전화 처방… 코로나 끝나면 원격진료 물 건너가나

조선일보
입력 2020.03.07 03:00

[아무튼, 주말]
갑작스럽게 시험대 오른 원격진료

일러스트=안병현
일러스트=안병현
"요즘 혈압은 어때요?"

지난해 초 심장의 주요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혀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스텐트 수술을 받은 박모(57)씨. 수화기 너머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씨는 병원과 약 400㎞ 떨어진 부산에 산다. 수술 후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받으며, 고혈압·고지혈증 약 등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원래대로라면 이날도 병원에 가야 하지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게 불안했던 박씨가 전화 진료를 신청했다. 예약된 외래 진료 날인 지난 2일, 심장내과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의사는 전화로 혈압 등 박씨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팩스를 통해 처방전을 박씨 집 근처 약국으로 보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전국 의료 기관에서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처방을 허용했다. 병원 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언제 끝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국민이 의료 기관을 이용하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인 특례를 인정한다"고 했다. 전화 상담·처방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의 원격 진료다. 원격 진료는 '상호작용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원거리에 의료 정보와 의료 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된다.

그간 의료법은 환자와 의사가 직접 만나지 않는 원격 진료를 금지해왔다. 오진 위험 때문이다. 의료계의 해묵은 논쟁인 '원격 진료'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시험대에 올랐다.

전화 진료 어떻게 하나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내과에 전화를 걸어 '전화 진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기존에 병원에 다닌 적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아 전문 한의원에서는 '코로나 19로 외출이 꺼려지실 텐데 전화 진료로 증상에 따른 처방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복지부는 이번 한시 적용 대상을 '전화 상담·처방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료 기관'이면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일반 병·의원은 물론이고, 한의원도 가능하다. 복지부 조사결과 지난달 26일 오후 8시 기준, 상급종합병원 42곳 중 21곳(50%), 종합병원·병원 169곳 중 94곳(56%), 의원 707곳 중 508곳(72%)이 이를 시행 또는 시행예정이라고 답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이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참여 여부는 전화로 미리 확인해 봐야 한다.

빅5 병원(상위 5개 대형 종합병원)은 모두 전화 상담·처방을 시행하고 있다. 빅5 병원은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이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대개 각 병원에서 한 번 이상 진료를 본 적이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또 병원에서 별도의 검사나 대면 처치를 할 필요가 없는 환자여야 한다. 간단한 결과 등을 들으러 방문하는 환자, 이전과 같은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오는 환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기존 외래 환자가 전화 진료 의사를 밝히면 진료과에서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한다"며 "하루 평균 250건의 전화 진료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일부에선 지역 제한을 둔다.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은 대구·경북 환자에 한해서만 전화 진료·처방을 진행한다. 심한 여드름과 가려움증 등으로 서울대병원에 다니던 A씨가 그 경우. 진료과에서 예약된 외래 날짜 하루 전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 진료 의사를 물었다. 의료진은 피검사 등 병원에 내원해서 별도로 받아야 하는 검사가 없고, 먹던 약을 크게 변경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 A씨의 전화 진료가 가능하다고 봤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대구 지역 환자 B씨도 의사와 전화 상담한 뒤, 면역억제제 등의 약을 처방받았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대구·경북이라고 해서 전화 진료가 다 되거나, 특정 질환이라고 되는 게 아니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각 진료과에서 이를 판단해 대상자를 정한다"고 했다.

병원비는 기존 외래 진찰료와 동일하거나 상황에 따라 더 저렴할 수 있다. 상급 종합병원 등에 다니는 환자의 경우 '의료질 평가 지원금'이란 항목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의료질 평가 지원금은 특진비 등이 폐지되면서, 의료 기관 역량 향상을 위해 환자가 내는 돈이다. 대략 5000원 내외. 야간, 공휴일 가산도 붙지 않는다. 수납 방식은 병원에 따라 다르다. 계좌 이체로 병원비를 받거나, 다니던 병원에 미리 등록된 신용카드 등의 정보를 활용하기도 한다. 추후 병원을 방문했을 때 내도록 하는 곳도 있다.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미수금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면 아예 전화 진료를 시작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환자·헬스케어업계는 환영

대부분 환자와 보호자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일부 의료 기관에서 확진자 등이 나오면서 병원 방문에 대한 불안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윤모(56)씨는 "심장약을 받으러 주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최근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 병원을 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전화 진료가 가능하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6세 자녀를 둔 김모(40)씨도 "아이가 배탈이 나 설사를 계속하는데도 소아과에 가는 게 꺼려졌었는데, 전화 진료를 통해 처방받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특히 지방 환자의 경우 시간과 비용 절감 등에 큰 도움이 된다. 경남 창원에 사는 전모(49)씨는 "수술 후 주기적으로 정기 검진을 하러 가는데, 5~6시간 걸려 이동한 뒤 2~3시간 기다려 진료 받으면 녹초가 된다"며 "코로나 이후에도 이 정책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도 이번 정책을 반기고 있다. 그간 의료법 한계로 제품 개발 후에도 이를 내놓지 못하거나, 일부 기능을 제한한 채 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 전문 기업 라이프시맨틱스는 전화 진료 지원 설루션인 '에필케어M'을 한시적으로 무상 배포할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에필케어M은 2015년 개발됐지만, 관계법령에 의해 출시가 보류됐었다. 에필케어M을 이용하면 앱(app·애플리케이션) 전용 체온계를 연동해 체온을 자동 측정할 수 있으며, 심박수·혈압 등을 앱에 입력 가능하다. 의료진은 이를 관찰해 환자를 진단할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인 박스터는 지난해 2월 국내에 원격 자동복막투석 관리 플랫폼 '셰어소스'를 도입했다. 복막투석 환자는 매일 재택 투석 치료를 하고, 이 결과를 수기로 기록해, 한 달에 한 번 이를 의료진에게 제출한다. 셰어소스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환자의 투석 치료 결과를 의료진에게 바로 전송한다.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의사가 원격에서 처방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관찰만 하되, 원격 처방은 할 수 없었다. 이은명 박스터 홍보 본부장은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원격 처방까지 이뤄져 환자가 편리하게 복막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술이 있어도 이를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는 "소아 신장 환자의 경우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아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거나, 학교를 빠져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원격 진료가 가능해지면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원격 진료 물꼬 틀까

그러나 전화 진료가 코로나 이후에도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의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2010년 이후 수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통과되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일부 시민단체 등은 원격 진료로 인해 불완전한 진료와 처방이 이뤄질 수 있고,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생겨 동네·지방 병원 진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대하고 있다. 또 원격 의료 주 대상이 될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이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루기 어렵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의 책임인지 장비 결함인지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복지부 발표 후, 의협은 보도 자료를 통해 "유선을 이용한 상담과 처방은 의사와 환자 사이 대면 진료 원칙을 훼손하는 사실상의 원격 의료로, 현행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검사가 필요한 환자의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또 "전화로 상담한 후 처방을 하더라도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약국을 방문해 약을 조제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환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며 "원내 조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등 의료 기관 직접 조제와 배송을 함께 허용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원격 의료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원격 의료를 도입하되 안정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면서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1%의 문제가 있어도 99%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사는 1000명 중 1명만 죽어도 그 윤리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고 했다.

美는 27년 전 원격진료 도입… 日은 우체국 직원이 처방약 배달
中은 해외 의사 진료도 허용

일본의 한 의사가 영상 통화로 당뇨병 환자를 원격 진료하고 있다.
일본의 한 의사가 영상 통화로 당뇨병 환자를 원격 진료하고 있다. / 일본 온라인 진료 업체 ‘야독’

미국은 1993년 미국원격의료협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원격 진료가 시행됐다. 넓은 국토 때문에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골과 대도시 간 의료 수준 차이가 벌어지면서다. 2014년에 이미 6건의 진료 중 1건이 원격 의료로 이뤄졌을 만큼 보편화돼 있다. 관련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 원격 의료 시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45.1%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일본은 2015년 8월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의료를 전면 허용했다. 고령화로 인해 환자 수는 증가하는데 지방 병원 등에 의사가 부족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처음에는 일정 기간 대면 진료를 하고, 이후 환자 선택에 따라 영상통화로 온라인 진료를 한다. 처방약은 우체국 택배를 통해 받을 수 있다.

의료 후진국으로 여겨지던 중국도 2015년 중국 환자와 미국 의료진 간 원격 진료를 허용했다. 의료 컨설팅 업체가 통·번역을 한다. 이듬해 3월에는 중국 내 병원과 환자 간 원격 의료 서비스도 시작했다. 병원을 찾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의사 진단을 받는 원격 의료 서비스 이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시장이 큰 만큼 샤오미·화웨이·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주요 IT 업체가 뛰어들어 원격 의료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