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골프 대표팀 감독 박세리 “제2, 제3의 스포츠 장인 키울래요”

입력 2020.02.29 10:00

[이코노미조선]

골프 외 낭비 없이 완벽 몰두
못 즐겨 아쉬워도 후회는 없어
방향 확실히 했다면 매진해야

2월 17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박세리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은 “과거보다 한 분야를 깊게 파기 어려운 시대”라며 “그럼에도 장인이 되고 싶다면 방향을 정해 어떻게 밀고 나갈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구 객원기자
2월 17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박세리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은 “과거보다 한 분야를 깊게 파기 어려운 시대”라며 “그럼에도 장인이 되고 싶다면 방향을 정해 어떻게 밀고 나갈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구 객원기자
박세리(43)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그의 이름 석 자는 국민 가슴을 움직이는 남다른 힘이 있다. 그가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어려움을 딛고 우승한 장면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12년 동안 LPGA에서 거둔 우승 전력은 25승, 그중에서도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기록이 5승. 박 감독 이후 미국에 진출한 수많은 ‘세리 키즈’도 아직 그의 기록을 깨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2월 17일 박세리 감독(이하 박세리)을 서울 논현동에서 만났다. 박세리의 골프 인생에는 장인정신이 녹아 있다. 엄청난 양의 연습과 훈련, 어렵게 극복한 입스(yips·심리적인 이유로 찾아오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를 통해 오른 정상의 자리는 그에게 ‘한국 골프의 레전드’라는 헌사를 안겼다. 수많은 세리 키즈가 박세리를 롤모델 삼아 골프에 뛰어들었고, 박인비 선수처럼 전설 반열에 이름을 올린 세리 키즈도 등장했다. 2016년 은퇴한 그는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에 이어 올해 도쿄올림픽에서도 여자골프 사령탑을 맡았다.

박세리의 다음 도전은 골프를 넘어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장인을 육성하는 것. 지난해 스포츠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하며 최고경영자(CEO) 직함을 달았다. 대회 개최, 유망주 후원·발굴 등을 통해 아시아 스포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골프 학교 설립도 추진 중이다. 그에게 골프 장인의 시작과 성장기, 부진을 딛고 일어선 부활기, 지금 구상하는 그림의 윤곽을 물었다.

골프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아빠 사업이 잘 안돼서 힘들었을 때였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빚 독촉을 당하는 광경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할 수 있는 동기이자 기회가 됐다. 꼭 성공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내 경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골프에 승부를 볼 기회가 온 셈이었다."

박세리는 한국에서 무서운 신예로 국내 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생활 1년 만인 1992년, 중학교 3학년인 박세리가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국가대표, 연이은 우승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프로로 전향한 후 미국행을 택했다. 더 큰 무대에 가고 싶었다. 1997년 1월 미국에 가 프로 무대 데뷔를 준비했다.

당시 일과는.

"아침 8시 30분에 연습장에 가 레슨받고 스윙 연습을 했다. 간단하게 점심 먹고 헬스장에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았다. 다시 연습장에 갔다가 헬스장으로 가는 일과를 반복했다. 집에 가서는 복습했다."

이 기간 그는 몸 만드는 법도 배웠다. 한국에서 배운 대로라면 아파도 하루 300개씩 공을 쳐야 했다. 테스트에 떨어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시스템은 달랐다. 아픈 곳이 생기면 기본 3주의 시간을 줬다. 실제로 박세리가 가진 상체 힘으로는 하루 100개가 한도였다. 체계적으로 관리를 시작하자 늘 있던 어깨 통증이 사라졌다. 몰입 과정에서 생기는 조급함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경험이다.

결국 박세리는 미국 진출 첫해인 199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메이저 대회 2승을 거둔다.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맨발 투혼이 두 번째 우승 장면이다. 이후 그는 매년 투어에서 우승을 챙기며 루키에서 세계적 스타로 성장했다.

어느 정도로 훈련했나.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했다. 심지어 슬럼프가 올 것에 대비해서 나 자신을 칼같이 통제하고 방어했다. 훈련 시간과 휴식 시간을 분(分) 단위로 지키고, 먹는 것도 미리 계산할 정도로 나를 옭아맸다. 인색했던 거다."

결국 탈이 났다. 자신을 학대하며 몰아세웠더니 슬럼프가 왔다. 2001년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승승장구하던 박세리의 커리어가 2004년 중반 멈춰 섰다. 이후 2006년 중반까지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80대 스코어가 자주 나오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국민 영웅’에서 ‘주말 골퍼’로 전락했다.

슬럼프를 감지한 순간 든 생각은.

"부정했다. 싫으니까. ‘아닐 거야’ ‘컨디션이 안 좋아서야’라고. 이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그 상태로 대회에 나가 스윙을 하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실수가 나왔다. 반복되자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었다."

박세리는 자신을 극한으로 몰았다. 더 일찍, 더 자주 연습장에 나갔다. 이미 꽉 채워진 연습량을 더 늘렸다. 티 박스(공을 치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올라가면 환청마저 들렸다. 그런데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기대감이 크니 더 아팠다"고 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낚시하며 힐링했다. 지인 권유로 따라나섰는데 해보니 골프 생각을 전혀 안 하게 됐다. 재미가 붙어 살림살이 챙겨 낚시하러 다녔다. 이때 정신이 많이 회복됐다. 다시 골프채를 쥐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결국 일어섰다. 슬럼프는 반드시 온다. 그때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극복에 도움이 됐을 거다."

2006년 박세리는 LPGA 맥도널드 챔피언십 우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연장전 끝에 경쟁자 캐리 웹을 물리치며 메이저 다섯 번째 우승을 챙겼다. 부진에 빠진 지 약 25개월 만이었다. 다음 해인 2007년 아시아인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 3000명의 참석자 앞에서 연설한 순간을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회상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던 순간의 기분은.

"단상에 선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세계 최정상 골퍼와 업적, 역사가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니까. 소감을 말하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그전에 우승도 많이 했지만, 그때가 꿈을 이룬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골프 후배뿐만 아니라 장인정신으로 승부를 보려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나는 답답할 정도로 하나만 보고 갔다. 그런데 그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 내 일에서 나만의 한계를 찾는 것도 좋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꿈이 컸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다만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실패했다고 좌절하면 안 된다는 것. 하나에 몰두하면서도 삶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그래야 더 오래갈 수 있다. 이걸 나는 못 했다. 그래서 더 강조한다. 워낙 열심히 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할 필요 없다, 여유 시간을 가지라고. 목표만 뚜렷하다면, 자신에게 더 여유를 주고 자신을 아껴야 한다."

그는 반려견 셋을 키우는 ‘엄마’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반려견 사진과 함께 성을 붙여 ‘박모찌’ ‘박찹쌀’ ‘박시루’라고 자랑할 정도로 ‘개불출’이다. 반려견 이야기에 활짝 핀 웃음에서 선수 시절 없었다는 여유가 묻어났다. 지난해 말 설립한 스포츠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CEO)로, 2020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눈코 뜰 새 없지만 골프의 장인이 새로운 장인을 키우는 새 역할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제2의 인생에선 다른 즐거움을 찾았나.

"지금은 새로 시작하는 일에 호기심이 많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신입 사원이나 다름없다. 선수 시절엔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춰 소통 없이 혼자 훈련만 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설립한 바즈인터내셔널의 목표는.

"스포츠인 박세리로서 한국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했다. 인기·비인기 종목 가리지 않고 모든 스포츠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대회 후원·주최, 소외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유망주 발굴, 교육 콘텐츠 등을 구상하고 있다.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니고, 아직 도화지에 스케치하는 단계지만 많은 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유망주를 발굴하고 있다. 과거와 지금 환경 차이는.

"소통이 많아졌다. 예전의 나는 시키면 해야 하는 환경에서 운동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해하게끔 도와준다. 예컨대 코치가 가르쳐주면, 제자는 궁금한 것을 묻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식이다.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는 식으로 소통한다."

선수 마음가짐도 과거와는 다른가.

"전문 분야 쪽에서 더 느껴진다. 성공하기로 했다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몰두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 분야 최고가 되고 싶은데, 또 다른 것도 하고 싶은 거다. 다른 의미로 욕심이 많다. 내가 운동할 때는 욕심이라면 딱 하나, 성공해서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단순한데, 그 단순함 속에 매우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장인을 꿈꾸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중에 중요한 것은 길을 선택하면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면 시간만 간다. 물론 이쪽저쪽 해보는 게 나쁘단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정확히 내가 뭘 원하는지를 찾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은 그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여기에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자로서 강조하는 것은.

"이유나 핑계를 대지 말자는 것.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실수하는 것도 ‘나’다. 결국은 나와의 싸움이 가장 어렵다.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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