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백신 예방주사가 만든 현대 도시

조선일보
  •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0.02.28 03:14

수천년 인류 문명은 전염병과 싸우며 세워져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 건조 기후대에서 발생
구약성경 소돔과 고모라의 소금도 위생에 도움

로마 수도橋, 파리 하수도는 위생적 환경 만들어
천만명 현대 대도시는 백신 개발 없었다면 불가능
앞으로 새로운 전염병은 공간 구성도 변화시킬 것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인류 문명은 도시가 만들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서로 다른 생각을 교류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었다. 도시에 모여 살게 되면서 상업과 기술이 발전했다. 인류 문명을 위해서는 도시가 필요했는데, 모여 살면 전염병이 문제였다.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염병을 해결해야 했다. 지난 수천년 인류 문명은 전염병과 싸우며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염병 때문에 초기 문명은 건조 기후대에서 발생했다. 건조한 기후는 전염병과 세균성 질병의 창궐을 막기에 유리하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구 건조 기후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했고, 나일강 하구 건조 기후대에서 이집트 문명이 발생했다. 건조한 기후와 더불어 소금도 위생에 도움이 되었다. 역사 초기 도시 중 구약성경에 나오는 소돔성과 고모라성이 있다. 이 둘은 소금 무역으로 돈을 번 도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을 장시간 보존하는 기술은 염장 기술과 소금을 이용한 발효법이다.

모여 살면 전염병이 문제였다

고대 이집트의 염장 기술은 미라 장례 문화를 만들었다. 발효 음식은 더 멀리까지 음식을 배송할 수 있게 해주었고, 더 오랫동안 음식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발효 음식 기술을 가진 집단은 공간 제약을 뛰어넘어서 더 넓고 오래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집단의 생존 확률도 높일 수 있었다. 건조 기후에 풍부한 소금은 전염병과 질병에 강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고대에는 그런 지역에 도시가 만들어졌고 최초 문명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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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양진경
로마는 건조 기후대를 벗어나서 인구 백만명 대도시를 만들었다. 로마는 먼 시골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도교를 만들었다. 덕분에 식용수를 해결하고 위생적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로마보다 더 북쪽에 있는 파리는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정기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파리는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수도를 개발했다. 더러운 폐수를 하수도로 분리 배출함으로써 물의 오염을 막았고, 전염병에서 벗어난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건축 기술로 전염병 문제를 해결해오다 인류는 18세기 들어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1798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 백신 개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인류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1822년에 태어난 세균학의 아버지,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저온 살균법, 광견병·닭 콜레라 백신을 발명했다. 이때부터 도시의 상하수도 시스템뿐 아니라 백신으로 전염병을 해결하는 시대가 열렸다. 인구 백만명 고대 도시는 상수도 시스템이 만들었다면, 인구 천만명 현대 도시는 백신 예방주사가 만든 것이다. 만약 백신이 없었다면 현대의 대도시는 불가능하고, 비행기를 통한 장거리 해외여행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1세기 인류 문명과 라이프 스타일은 백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극단적 위기는 변화의 도화선

코로나 사태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아무리 온라인 경제가 커졌다고 해도, 아직도 우리 경제는 많은 부분 오프라인 공간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기원전 3500년 시작한 도시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위는 인터넷 시대에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아직도 학교나 회사에 가야 하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다. 우리는 생각보다 꽤 많이 모여서 행동한다. 둘째, 이런 도시 공간이 전염병으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우한의 텅 빈 도로를 보면 전염병은 20세기에 고안된 도시 공간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1세기에는 신형 바이러스의 정기적 출현과 더불어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영구 동토(凍土)에 묻혀 있던 고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지도 모르는 현실을 맞고 있다. 전염병은 미래에 가장 심각하게 우리의 공간을 바꿀 요소 중 하나다. 통신 기술 발달로 재택근무가 일상화할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재택근무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는 오래된 종교 집회 형식도 인터넷 방송으로 바꾸었다. 마트만 이용하던 50~60대가 전염병 염려로 배달 앱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롯데쇼핑은 전체 매장의 30%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극단적 상황은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이는 공간 구성의 변화를 이끈다. 위기는 변화의 도화선이다.

문제는 그렇게 바뀌는 공간을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하느냐다. 마트가 있다가 비워진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할 때다. 위기와 변화는 기회이기도 하다. 향후 전염병에 더 강한 도시가 되려면 먼 지역 간 교류보다는 작은 규모로 자족적 도시 구역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여러 경제행위가 온라인으로 흡수되면서 비게 될 도심 공간에 청년 주거와 새로운 형식의 학교를 넣어서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만 사람 간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끼리끼리 소통만 일어난다. 이를 깨뜨려 줄 온라인 공간도 필요하다. 이 시대는 전염병에 강하면서도 창조적인 환경의 새로운 도시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를 해결하는 도시가 다음 시대를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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