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경쟁 2막… “뒤처지면 되돌릴 수 없다”

입력 2020.02.24 08:00

[이코노미조선]

누리호 발사 D-1년, 내년 2회 발사
로켓은 우주 개발의 기본 요건
우주로 옮겨간 G2 패권 싸움

국산 기술로 개발하는 첫 번째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를 1년 앞둔 1월 30일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섬 언덕배기의 한 연구동 옥상에 올라 남해를 비롯한 우주센터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연구동으로부터 1.5㎞ 남짓 떨어진 추진기관 시스템 시험 설비에서 나는 소리였다. 동시에 시험 설비 안쪽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설 내부의 어떤 물체가 강력한 추진 성능을 과시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누리호 3단(상단부)에 장착할 7t급 엔진의 종합 연소 시험을 진행했다. 3단은 로켓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부분이지만, 끄트머리 위성 덮개(페어링) 안쪽에 1.5t급 실용위성을 품고 있는 핵심부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전영두 항우연 발사체체계종합팀 팀장은 "로켓 연구·개발(R&D) 시 가장 정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부위가 3단"이라고 설명했다.

1월 30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체 조립동에서 연구자들이 누리호 1단을 조립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1월 30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체 조립동에서 연구자들이 누리호 1단을 조립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누리호는 2021년 2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발사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지금까지 총 2조원을 투입해 누리호 개발 사업을 지속해 왔다. 2013년 1월 발사된 ‘나로호’는 1단(하단부)을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왔다. 외국 도움 없이 모든 과정을 자력으로 해내는 건 누리호가 처음이다. 나로우주센터 연구원들의 사뭇 비장한 표정에서 1년 앞으로 다가온 발사 스케줄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소 시험은 538초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다. 누리호는 지상에서 발사된 뒤 1단과 2단을 차례로 분리한다. 2단을 떨어낸 3단은 7t급 엔진을 약 530초 동안 연소하면서 정해진 항로를 비행해야 한다. 이날 항우연이 연소 시험을 멈추지 않고 540초가량 실시한 이유다. 이 모든 발사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실용위성은 목표 궤도인 600~800㎞(태양동기궤도)에 안착할 수 있다. "2월 말에도 이런 연소 시험을 수행해 3단 로켓의 성능을 최종적으로 점검할 계획입니다." 전 팀장이 엔진 소음에 묻히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항우연은 2018년 11월 28일 누리호의 2단에 해당하는 로켓만 별도로 쏘아 올리는 시험을 진행했다. 3단과 달리 2단에는 75t급 엔진이 탑재되는데, 이 엔진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비행 시험을 한 것이다. 당시 시험 발사체는 151초(목표 140초) 동안 엔진을 연소하며 남측 공해상으로 약 429㎞ 비행한 후 낙하했다. 최대 고도는 209㎞였다. 시험 발사 성공으로 자신감을 쌓은 항우연은 1·3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소 시험이 끝난 후 방문한 발사체 조립동에서는 최대 직경 3.5m, 길이 23m에 이르는 누리호 1단 개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1단에는 75t급 엔진 4기(추력 300t)가 장착된다. 무게만 200t에 이르는 누리호를 땅에서 공중으로 밀어 올리는 ‘하체’ 역할을 맡는 만큼 가장 센 추력을 부여한 것이다. "보고 계신 (1단) 로켓은 80% 정도 완성된 상태로, 2월 중 조립을 마칠 예정입니다." 조립동까지 동행한 전 팀장이 설명을 이어 갔다.

연구자 10여 명이 대형 철근 받침대 위에 길게 누운 1단 로켓 아래에서 복잡하게 엉킨 전선과 배관을 구분하고 테이핑 중이었다. 모든 연구자의 복장이 같아도 소속은 다양하다고 전 팀장이 귀띔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발사체 총조립)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배관), 한양엔지니어링(가스) 등 민간기업 연구자들이 항우연 연구진과 한데 어우러져 발사체를 만들었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은 누리호 개발의 피날레인 1년 후 발사에 대한 근심과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고 본부장은 "항우연의 로켓 개발 역사가 총 30년인데, 순탄하게 흘러간 적이 한 번도 없다"라며 "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 로켓의 특성상 기술 교류나 이전을 거의 못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일단 내년에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고 나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더 쉽고 빠르게 밟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 31일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엔지니어들이 한국형 발사체에 장착될 75t급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1월 31일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엔지니어들이 한국형 발사체에 장착될 75t급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시험 발사 성공에 회장상 준 한화 김승연

한국형 우주 발사체 개발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땀 흘리는 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1월 31일 방문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남 창원 사업장에서는 누리호에 탑재될 엔진 조립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큰 작업장 내부로 들어서자 이미 완성됐거나 한창 조립 중인 엔진이 곳곳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굵직한 연소기와 측면으로 길게 뻗어 나온 터보펌프가 금방이라도 불꽃을 뿜어낼 것 같았다. 실처럼 가느다란 배관 수백 개는 복잡하게 얽힌 상태로 엔진 외부를 장식했다.

누리호 엔진은 항우연이 설계하면 한화가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도면대로 만드는 단순 작업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창원에서 만난 손종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부 대리는 "배관의 미세한 굵기나 휘어지는 각도 차이에 따라 연소 품질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설계도로 알 수 없다"며 "오랜 경험의 엔지니어들이 손으로 익힌 ‘도면 밖’ 조립 노하우가 가미되지 않으면 완벽한 엔진이 탄생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누리호 엔진 제작에 참여 중인 한화 엔지니어 대부분은 기능장 자격증 보유자다.

정부도 이들의 ‘손재주’를 믿고 한화에 누리호 엔진 46기 제작을 통째로 맡겼다. 75t급 엔진 34기와 7t급 엔진 12기다. 이날 창원에서는 16명의 엔지니어가 각자 맡은 엔진 앞에 서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부 차장은 "현재 공정률은 60% 정도 수준"이라며 "항우연의 시험 스케줄에 맞춰 엔진 제작 속도를 조율한다"고 전했다.

사실 수익 관점에서만 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누리호 엔진 제작으로 큰 재미를 보는 건 아니다. 이에 따른 한화 엔지니어들의 사기 저하 우려를 없앤 건 40년 동안 한화그룹을 이끌어온 김승연 회장이다. 김 회장은 2018년 11월 시험 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날아오르자 창원사업장 작업자들을 서울로 불러 ‘회장상’을 안겼다. 김 차장은 "직장생활 만 30년 동안 회장상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며 "한국의 우주 개발 역사에 참여한다는 자긍심과 애사심이 절로 생겼다"고 말했다.

◇"우주 개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이코노미조선’이 고흥·창원을 돌며 확인한 사실은 현장 연구자들이 ‘우주 강국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노력에 비하면 한국이 갈 길은 너무나도 멀고 험하다. 우주 개발은 막대한 돈과 강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다. 많은 전문가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챙겨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실제로 최고 지도자가 앞장선 나라의 우주 경쟁력은 그렇지 않은 국가와 큰 격차를 만들어낸다. 미국이 무려 50년 전 인류 최초로 달에 오른 우주인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었다. 마오쩌둥 전 주석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각각 중국과 일본을 우주 강국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 반면 한국은 기본적인 우주 계획조차 정권 관심사와 정치 구호에 따라 수시로 흔들린다. 달 탐사선 발사 일정만 해도 노무현 정부 시절 2025년에서 박근혜 정부 때 2020년으로 당겨졌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2030년으로 밀렸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심한데, 우주 개발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는 점은 우주 강국의 꿈을 더 멀어지게 한다. 유로컨설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우주 개발 투자 규모는 6억7000만달러(약 7936억원)다. 이는 359억달러(약 42조5236억원)인 미국과 49억달러(약 5조8041억원)를 쏟아붓는 중국은 물론 30억달러(약 3조5535억원) 수준인 러시아·일본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한국의 우주 발사체 기술 수준을 ‘후발’ 그룹에 묶었다. 미국은 ‘최고’, 중국·일본은 ‘추격’ 그룹이다.

과거 소련을 견제하던 미국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역사적인 달 표면 착륙 신화에도 이후 3년 만에 달 탐사를 중단했다. 쏟아붓는 비용 대비 성과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랬던 미국이 지난해 달 탐사 계획을 다시 공식화하고 전 세계의 참여를 요구하고 나섰다. 달 탐사의 투자 대비 효과가 갑자기 좋아져서일까. 아니다. 이번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각국이 앞다퉈 우주군을 창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1960년대의 한국과 202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은 전혀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다. 선진국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할지 개발도상국 꼬리표를 떼지 못할지는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렸다. 패권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달아오르는 21세기 우주 개발 트렌드를 한국이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이유다. 우주 개발은 국방·안보·경제·과학 분야를 총망라하는 종합 예술이자 부국강병의 필수 코스다.

‘이코노미조선’은 우주 경쟁력 확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국산 우주 발사체 확보의 중요성과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이번 커버 스토리에 담았다. 기 싸움 공간을 무역에서 우주로 옮겨간 G2(미·중)의 숨 막히는 대결과 나머지 주요국의 행동 전략에 대해서도 다뤘다. 우주의 무궁무진한 시장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뛰어든 용기 있는 기업인의 이야기도 녹여냈다.

지금부터 ‘이코노미조선’은 독자 여러분과 무한한 지구 밖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국가 생존에 필요한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해볼 것이다. 자, 그럼 출발해보자.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Keyword
우주 발사체(Space Launch Vehicle) 지구에서 우주인이나 인공위성, 우주 정거장 모듈, 우주 망원경 등을 싣고 우주 공간의 목표 지점으로 날아가는 로켓이다. 지구~우주 간 배달부인 셈이다.

plus point

국산 위성은 연달아 우주로

걸음마 단계인 우주 발사체와 달리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 역량은 상당하다. 우리 정부는 1999년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위성) 1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7기의 위성을 우주로 보냈다. 민간까지 포함한 기준으로는 카이스트(KAIST)에서 개발해 1992년 발사한 ‘우리별 1호’가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해양·대기 환경을 관측하는 ‘천리안 2B호(사진)’를 2월 18일(현지시각) 남아메리카 기아나의 쿠르 발사장에서 쏘아 올린다. 발사체는 프랑스의 아리안 로켓이다. 천리안 2B호는 적도 상공 3만6000㎞에서 지구를 도는 정지궤도 위성이다. 정부는 2011년부터 약 3800억원을 들여 이 위성을 만들었다. 정지궤도 위성 가운데 미세먼지 관측 환경탑재체가 탑재된 건 천리안 2B호가 처음이다. 임무 수행 기간은 10년이다.

정부가 5년간 개발해온 ‘차세대 중형위성 1호’도 올해 하반기 러시아 소유스 로켓에 실려 우주로 떠난다. 한반도 지상·해양을 관측하는 ‘아리랑 6호’와 국가 안보 관련 지역을 선별해 관측하는 ‘아리랑 7호’도 내년 중 발사된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은 "누리호 개발을 계기로 국산 위성을 국산 로켓에 실어 나르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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