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골동품이 아니다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2.15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조선 백자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골동품이 아니다
일러스트= 김영석
지난 6일은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나는 모교인 숭실고등학교 전 교장 최덕천, 현 교장 윤재희와 함께 강원도 양구를 방문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근현대사 박물관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도자기 방으로 갔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내가 소장하다 옮겨놓은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선조들이 애용한 도자기들이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조지훈의 시 '도자기 예찬'도 보였고 품격을 갖춘 김용진의 문인화도 두 점 걸려 있었다.

두 교장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내가 오래 머리맡에 두고 정들여 왔던 조선왕조 초기 아름답고 우아한 백자 앞으로 갔다. 이미 습관이 된 대로 '잘 있었지! 좀 더 내 서재에 같이 있다가 와도 좋았는데…'라고 말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때 뭔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도자기가 나에게 소리 없는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골동품이에요. 한국의 전통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이곳에서 저희 옛날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감사해요. 그러나 선생님은 아직 골동품은 아니잖아요. 여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선생님의 오늘과 내일을 보러 오지 과거의 선생님을 보러 오는 것은 아니에요' 하는 속삭임 같았다.

호수 맞은편에 있는 '철학의 집'으로 갔을 때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두 교장 선생도 지난날의 내 모습을 관람하면서, 옆에서 안내하는 나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10여 년 세월이 지나면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 물론 공원 서북쪽에 있는 안병욱과 내 묘소도 찾아 줄 것이다. 거기에는 '여기 조국과 겨레를 위해 정성을 바친 두 친구가 잠들어 있다. 그들의 세대는 사라지고 있으나 그 마음은 길이 남을지어다'라는 침묵의 묘비가 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철학의 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우리의 과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을 되찾아 주기를 바라게 될 것 같다.

기념관은 그 주인공의 사후에 중의를 모아 세우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철학의 집'은 그런 순서가 못 되었다. 우리 둘은 90 고개를 넘긴, 갈 곳 없는 탈북자였고 안병욱 교수는 병중(病中)이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안식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었다. 안 선생은 양구가 처음이면서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나도 안 선생의 묘비 앞에 설 때마다 안 선생을 회상하기 위한 기념관인지 그분의 뜻을 이어받기 위한 곳인지 스스로 묻는 때가 있다.

2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기념관. 여기는 우리 둘의 지난날을 기념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우리와 마음을 같이하는 이들의 장래를 위해 더 소중하다는 뜻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밀알이 더 많은 열매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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