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개입 혐의' 임성근 부장판사, 1심서 무죄

입력 2020.02.14 11:05 | 수정 2020.02.14 15:58

연이어 무죄 선고되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日 산케이 박근혜 명예훼손 등 형사 재판에 개입한 혐의
"지위 이용한 불법행위… 징계사유지만, 직권남용 아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56·사법연수원 17기·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사진)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1심 판결이 내려진 전·현직 법관 5명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선고된 임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 특히 주목해왔다. 이전 사건이 법원 내부 정보나 검찰 수사정보 등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였던 것과 달리, 임 부장판사 사건은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1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2015년 이른바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또 2016년 프로야구선수 도박 사건 약식명령 재판을 정식 재판으로 회부하려는 판단을 막고 약식으로 사건을 종결하도록 한 혐의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재판 당시 선고 이후 등록된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를 수정하고 일부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헌법은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이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사법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를 위해 다른 국가기관이나 외부 세력 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부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법원은 조직과 운영 및 기능에 있어 대내외적으로 독립해야 하고, 이는 법원의 행정작용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법행정권도 궁극적으로 사법권 독립 내지 법관 독립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므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다"며 "법관은 사법행정사무에 관해서는 지휘·감독을 받지만,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 등 재판업무에 관해서는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면서도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법관의 재판업무에 개입하는 것"이라며 "사법행정권은 법관 독립의 원칙상 재판 업무에 관해 행사할 수 없고, 그런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사법행정권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위임·지시 또는 명령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법과 제도를 종합적으로 보면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다"며 "오히려 임 부장판사의 (당시) 지위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다만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인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며 "이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여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결론냈다.

임 부장판사의 지시를 받은 부하 판사들의 ‘권리행사’가 방해된 것도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합의부의 재판은 합의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고, 재판장의 의사와 독립돼 있어 재판장이 혼자서 이를 결정할 수도 없다"며 "(임 부장판사의 요청을 받은) 부장판사들은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법적 판단 및 합의부 내의 논의 등을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재판부와 합의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 부장판사의 요청과 부장판사들이 소속된 재판부의 재판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됐다"며 "다른 사안도 담당 판사가 동료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하는 등 임 부장판사의 요청과 약식명령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했다.

검찰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재판 독립의 원칙상 재판 개입을 위한 직무권한이 존재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직권남용죄도 성립할 수 없다면 인사권자나 상급자의 어떠한 재판 관여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며 "직권남용죄의 보호법익인 ‘국가기능의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사법의 영역에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임 부장판사의 지시나 요청에 따라 판결 이유를 고치고 결정을 번복했다는 재판장의 진술이 있는데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해 직권남용죄의 법리에 대한 판단을 다시 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전날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관 비위 의혹 관련 검찰의 수사 자료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도 지난달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 의혹 관련 소송 정보를 파악해 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들이 법원행정처 지시를 받고 기밀을 유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러나 판사들의 '보고 업무’가 행정처와 '공모'한 범죄임이 입증되지 않고, 수사·재판 방해로 이어질 기밀누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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