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주고받는 패스만, 우리만의 농구 살리지 못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2.14 03:15

[여자농구 대들보 박지수, 협회 운영·감독 전술 '작심 비판']

"덩치 큰 외국선수와 싸워야 국제대회서 잘할 수 있는데… 우린 평가전 한번도 못해봐
선수들 리그 뛰는데 일찍 소집, 영국전서 12명 중 6명만 '혹사' 최종전엔 체력 바닥나 무기력"

여자 농구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22· 198㎝)는 소속팀 KB스타즈에 복귀한 13일에도 올림픽 걱정뿐이었다. 팀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해온 그였지만,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고 지쳐 보였다.

한국 여자 농구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림픽 진출 일등 공신 박지수는 최종 예선(2월 6~9일·1승2패)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전(60대100)에서 크게 진 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서 뛰는 것이 창피하다고 느껴졌다"며 "그렇게 질 경기도, 질 선수들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대표팀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나온, 대표팀 막내의 작심 발언이었다. 박지수는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대로라면 올림픽에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영국전 못 뛴 선수, 나라도 화났을 것"

박지수는 귀국 회견에서 "문제 있었던 것 다들 아실 것이다. 선수들은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문규(64)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박지수는 이에 대해 "감독님과 불화는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전술적인 부분에선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했다.

여자 농구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가 13일 소속팀 KB스타즈의 훈련장인 KB국민은행 천안연수원 체육관 앞에 선 모습.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했음에도 기자회견에서 “창피하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던 그는 이날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여자 농구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가 13일 소속팀 KB스타즈의 훈련장인 KB국민은행 천안연수원 체육관 앞에 선 모습.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했음에도 기자회견에서 “창피하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던 그는 이날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이 감독은 영국전에서 전체 엔트리 12명 중 6명만 코트에 내보내고, 나머지 6명은 경기 내내 기용하지 않았다. 영국전을 앞두고 배탈과 몸살 기운을 느꼈던 박지수는 2분 40여 초만 쉬었다. 다른 주전 3명은 40분을 모두 뛰었다. 박지수는 "12명 모두 국가대표인데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내심 서운했을 것 같다. 저였다면 많이 화났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체력이 바닥난 한국은 상대 슛 실패로 간신히 승리를 거뒀지만, 다음 날 중국전에서 체력 열세를 드러내며 대패를 당했다. 박지수의 체력적인 부담은 대회 전부터 예상됐다. 이 감독은 센터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로 박지수와 배혜윤(31·삼성생명) 두 명만 선발했다. 박지수는 "최종 예선을 떠나기 전부터 혜윤 언니와 이 부분을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고 했다.

◇"잘할 수 있는 것 못했다"

박지수는 "한국은 중국이나 유럽처럼 키가 크지도 않고, 일본처럼 빠르지도 않다. 결국 상대보다 더 많이 뛰고, 스크린도 자주 걸면서 내외곽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서서 패스를 주고받는 정적인 플레이를 한 것 같다"며 "우리만의 장점을 살리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했다.

손흥민처럼 쉼 없이 달려온 박지수 정리 표

박지수는 최종예선 준비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이 감독은 본래 WBKL(한국여자농구연맹)이 휴식기로 정했던 기간(1월 25일부터)보다 나흘 이른 1월 21일부터 선수들을 소집했다.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6구단 감독들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결국 선수들은 리그 일정을 소화하면서 진천선수촌을 오가야 했고, 대회 전부터 체력적인 부담을 안았다. 박지수는 "1월 23일엔 KB스타즈와 삼성생명의 경기로 나를 포함해 대표팀 절반인 6명이 빠졌다. 제대로 된 전술 훈련을 하기 어려운데, 굳이 일정을 앞당겨야 했나 싶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문규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평가전 '0'… "협회 지원도 아쉽다"

2017년 프로에 데뷔한 박지수는 2018∼2019시즌 KB스타즈의 첫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역대 최연소 챔피언 결정전 MVP(당시 20세 3개월)에 선정됐다. 재작년 4월엔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WNBA(미 여자 프로농구)에 진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험을 쌓으면서 기량이 늘었다. 박지수는 이번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르며 협회의 전폭적 지원 없이 세계의 높은 벽을 깨긴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박지수는 "외국팀을 상대한 경험이 많아야 국제대회에서 긴장하지 않고 제 경기력을 펼칠 수 있는데, 우리는 외국 팀과 평가전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평가전 대신 국내 프로팀 소속 외국 선수들을 모아 세 차례 연습경기를 치른 게 전부였다.

박지수는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유니폼을 입고 뛰며 2018·2019년에 중국 여자 대표팀과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그는 "중국 대표팀이 매년 비시즌에 미국 전역을 돌며 프로팀과 평가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와, 우리도 저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란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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