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日 올림픽 노이로제와 '작은 우한'

조선일보
입력 2020.02.14 03:18

1964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이 원폭과 패전을 딛고 세계 2위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기적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당시 성화의 최종 주자가 1945년 원폭 투하 당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열아홉 살 육상 선수였다. 64년 올림픽을 유치한 인물이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할아버지와 개막식을 본 열 살 아베는 훗날 저서에서 "일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했다. 올해 아베의 지상 목표는 도쿄올림픽을 다시 성공시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가라앉은 일본을 되살리는 것이다. 성화 출발지도 후쿠시마 원전 인근이다. 요즘 일본의 모든 국정(國政)은 온통 '올림픽'에 집중돼 있다.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어제 218명으로 늘었다. 검진자 중 감염률이 30%를 넘는다. 일주일 전 감염률은 20%였다. 아직 승객 3000명이 검사를 받지 못한 만큼 확진자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지난 2일 홍콩이 승객 1명이 감염됐다고 통보하고 5일 확진자가 10명으로 불었다. 승객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들을 하선시켜 분산 격리하고 검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확진자가 '일본 감염자 통계'에 잡히고 이것이 올림픽을 앞둔 일본 이미지에 상처를 줄까 봐 걱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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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답지 않은 사태 대응을 보면 일본 정부가 올림픽 노이로제(신경증)에 걸린 것 같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일본 언론도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일본은 언론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평가가 과장만은 아닌 것인가. 배에 탄 미국인 노부부가 "트럼프 대통령,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수많은 승객과 승무원들이 '올림픽 인질'이 됐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1964년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소설 '올림픽의 몸값'을 썼다. 온 국민이 경기장 공사와 외국 손님 맞이에 총력전인데 도쿄에서 의문의 연쇄 폭발 사고가 난다. 범인은 올림픽을 인질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경찰은 올림픽을 지킨다며 사건을 쉬쉬한다. 소설에선 일본 언론도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우한 폐렴이 확산 중이라는 진실을 은폐했다가 우한을 '절망의 도시'로 만들었다. 중국 공산당은 강제 통제로 일을 키웠다. 그런데 일본 사회는 자발적 통제로 3700명이 탄 유람선을 '작은 우한'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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