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이런 국가'에 자부심을 가지란 말입니까?

조선일보
입력 2020.02.14 03:20

"이게 나라냐"며 사람들이 절망하는데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대통령은 '아! 대한민국'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의 느닷없는 '국가 예찬'을 보고 80년대 유행가 '아! 대한민국'이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주말 문 대통령은 우한 철수 교민들을 찾아가 "국가가 왜 필요한지 절실히 느꼈을 것"이라며 '국가 자부심' 철학을 펼쳤다. "국가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에 국민도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국가'라고 했지만 결국 정부가 잘했다는 자화자찬일 것이다. 동행한 충북 지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조기 수습 대책"이니 "존경의 말씀" 운운하며 화음을 맞췄다.

과연 그럴까. 한 템포 늦은 뒷북 대책과 잇단 실책으로 감염 피해를 키운 정부였다. 국민 생명보다 중국 눈치 보기 바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세계 최고 대책'이라 할 만한 근거도 빈약했지만 더 요령부득인 것은 난데없는 '국가 찬양'이었다. 나라 돌아가는 꼴에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아! 대한민국'의 찬가를 부른다.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대통령이 "이래서 나라가 존재한다"는 긍정의 국가론을 설파하고 있다. 도무지 아귀가 안 맞고 생뚱맞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여 동안 많은 사람이 "이게 나라냐"고 한탄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좋은 일자리가 없어졌으며,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념 실험을 고집하는 자해(自害)의 국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런 정부가 왜 필요한지 의문을 품게 됐다. 동맹이 흔들리고, 중국 가서 푸대접받고, 북한에게서 '삶은 소 대가리' 모욕을 당할 때마다 "이것도 나라냐"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든 대통령이 '국가의 자부심'을 말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다.

국가란 법치(法治)의 공동체다. 이 기본 중의 기본부터 무너트린 것이 문 정권이었다. 청와대가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을 뭉개는 것은 자신들이 법 위에 군림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가 총동원돼 공약을 짜주고 경쟁자를 제거해 준 혐의가 드러났다. 사실이라면 정권이 날아갈 희대의 정치 공작이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해명 한 줄, 사과 한마디 없이 도리어 검찰의 항명을 탓하고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압수 수색 영장마저 거부했다. 일개 비서관이 검찰을 향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넘은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주국가와 왕조(王朝)를 가르는 잣대가 법치다. 지금 벌어지는 권력의 폭주에서 조선 왕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선 조정은 정적(政敵)을 변방에 유배 보냈고, 문 정권은 자기에게 칼을 겨눈 검찰 수사팀을 지방에 좌천시켰다. 이를 보고 어떤 영국 언론은 "조선 시대 귀양"에 비유했다. 조선 지배층이 정치적 반대파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면, 이 정권은 '적폐'란 딱지를 붙였다. 앞 정권 인사들을 탈탈 털어 숙청한 적폐 청산은 '현대판 사화(士禍)'로 지칭되고 있다. 권력 실세들의 정신세계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한 여당 중진의 글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형조판서(추미애)가 입조했으니 의금부 도사(윤석열)는 원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왕조 같은 나라에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가.

국가는 통합의 공동체라야 한다. 아무리 싫고 달라도 국민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돼야 하는 것이 국가다. 문 정권의 국정엔 '국민'이 없다. 국민이라는 통합체 대신 진영 논리와 패거리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자기편이면 절대선(善), 상대편이면 적폐이자 개혁 대상이다. 특권과 반칙을 일삼아도,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내 편이면 덮어 주겠다고 한다. 친문 운동권과 참여연대, 민노총과 민변이 온갖 자리와 이권을 싹쓸이하면서 그들만의 거대한 카르텔을 완성했다. 정파·이념을 초월해 위기 때마다 힘을 합치던 대한민국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 문 정권이 구사하는 분열의 통치술이 반쪽짜리 나라를 만들었다.

국가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의 공동체다. 온 국민을 잘 먹고 잘살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정부의 정책들은 경제를 쪼그라트리고 더 못살게 만드는 '국민 빈곤화'의 역코스를 치닫고 있다. 잘못 설계된 정책들이 하위층 근로소득을 줄이고, 질 좋은 일자리를 대량으로 없애고, 중산층을 쪼그라트렸다. 국익보다 진영 이익, 현실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정책이 성장 동력과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켰다. 국민 59%가 "2년 새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고 대답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나라인가.

"국가가 왜 필요한지 느꼈을 것"이라며 정신 승리의 국가론을 펼치는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란 어떤 국가인가. 이런 꼴이 된 나라에 어떻게 자부심을 가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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