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노무현 탄핵’ ‘문 정부 탄핵’ 같은 점 다른 점

입력 2020.02.13 18:10


혹시 ‘2004헌나1’ 이게 뭔지 아시는가? 2004년, 지금부터 16년 전 있었던 일이다. ‘헌’은 헌법재판소, 그리고 ‘나1’은 일련번호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탄핵 기각 결정문이다.
거의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큼 방대한 문서이지만, 여러분께서도 시간 날 때 꼭 한번 일독하시라 권해 드린다. 누구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이 꼭 한 번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결정문을 보면, 대통령이란 어떤 자리인지, 대통령도 공무원이라고 봐야 하는지 아닌지, 그렇다면 대통령은 어떤 성격을 가진 국가 공무원인지, 그리고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당적(黨籍)을 그대로 갖고 있긴 하지만 왜 대통령은 끝까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지, 이런 내용들이 아주 자세하고 쉽게 정리돼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 드린다. 노무현 탄핵 때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소추를 기각했던 가장 중요한 논리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익을 얻을)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노무현 발언’으로 이익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온 국민의 관심 대상인 울산 선거 공작은 어떤가. 청와대가 특정 야당 후보를 찍어내고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기 위해 공작을 벌였고, 실천됐고, 당선됐다. 다시 말해 송철호 시장이 확실한 이익을 본 사람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입됐다면 문 대통령은 정확하게 ‘탄핵 요건’을 갖췄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돌아가서 ‘노무현 탄핵’의 헌재 결정문을 보면 첫 부분에 ‘판시 사항’이 요약돼 있다. 이 부분 제7항은 ‘기자회견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한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살폈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발언을 했을까. 총선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 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분명하게 해줄 것."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 등등 예닐곱 건의 발언이 적시돼 있다.

자, 그렇다면 헌번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그대로 옮겨 보겠다. ‘따라서 선거에 임박한 시기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때에, 공정한 선거관리의 궁극적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직의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헌재 ‘결정요지’ 제7항)’
헌법재판소는 명확하게 판단했다. ‘피소추자 대통령 노무현’이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한 것이다. 바로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그런데 왜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탄핵을 기각했을까. ‘결정요지’ 제8항에 그 이유가 나온다. 그대로 옮겨 본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발언이 이루어진 시기인 2004. 2. 18.과 2004. 2. 24.에는 아직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후보자의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헌재 ‘결정요지’ 제8항)’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당내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언을 했기 때문에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 선거공작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 친구인 송철호라는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옹립해놓고, 그 사람이 울산 시장에 당선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간 치밀하고 계획적인 선거개입 공작이었다. 당내 경쟁자들에게는 다른 공직을 제안하고 출마 포기를 종용하면서 첫 걸림돌을 제거하고, 상대당인 한국당 후보 김기현 시장에겐 비리 혐의를 씌워 수사하도록 경찰에게 하명 지시를 하고, 스무 차례 넘게 수사 보고서를 청와대가 접수했으며, 송철호 후보를 청와대로 불러들여서 상대당 후보의 공약을 무산시키는 대신 송철호 후보의 공약을 청와대가 적극 지원하는 계략을 꾸미고 실천하는 등 모든 범죄 혐의가 검찰 공소장에 낱낱이 적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언론과 야당은 되도록 ‘문재인 탄핵’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조심해왔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그 말을 쓴다는 것은 커다란 역풍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탄핵 때도 그랬다는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진보진영에서조차 "대통령의 개입이 드러나면 그것은 명백한 탄핵 사유"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우선 "추미애 법무장관 탄핵부터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씀 드리겠다. ‘노무현 탄핵’을 기각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그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선거 공작이 얼마나 명백하게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우한 폐렴 사태로 인한 서민 고통을 살피러 남대문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마음은 절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은 ‘울산 사건’으로 꽉 차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말씀 드리지만, 4.15총선은 ‘울산 사건’ 심판 선거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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