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13 03:00

[오늘의 세상] '마스크 대란' 수급 점검해보니

생산업체 70%가 중국산 의존하는데 필터 재고량은 거의 바닥
업계 줄줄이 휴·폐업위기… 정부가 장담한 하루 1000만개 흔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하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보건용 마스크가 시중에서 품귀 현상을 빚는 가운데 12일 국내 마스크 생산 공장 한 곳이 가동을 멈췄다. 국내 마스크 생산업체 70%가 쓰는 중국산 마스크 필터 공급이 끊긴 결과였다. 가동 중단이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기 남양주시의 마스크 제조업체 A사(社)는 이날 "MB 필터 수급이 끊겨 오늘부로 공장이 휴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MB(Melt Blown) 필터는 보건용 마스크 필수 재료다. 국내에서도 생산되지만, 업계에 따르면 마스크 제조업체 123곳 가운데 100곳 가까이가 중국산을 사용해왔다. ㎏당 가격이 국산 2만원, 중국산은 1만6000원 정도로 국산이 25%가량 비쌌기 때문이다. 중국산 수입이 끊긴 지금은 국산 가격이 ㎏당 4만원에 육박한다. A사 대표이사 김모(50)씨는 "지금 시세로 국산을 쓰면 마스크 가격이 올라도 하루 5억원씩 손해가 난다"고 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상가 약국에 마스크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마스크를 찾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영세 매장들이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국내 마스크 생산 업체들은 “중국산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 생산량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상가 약국에 마스크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마스크를 찾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영세 매장들이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국내 마스크 생산 업체들은 “중국산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 생산량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국내 생산업자들은 "중국산 필터 공급이 끊긴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국 내 춘제 이후 공장 휴업일이 길어져서 벌어진 일시적 현상으로 곧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한국과 베트남으로의 마스크 원자재와 장비의 수출을 중단해 공급망을 교란시켰다"고 보도했다.

A사의 하루 생산량은 15만개다. 정부 추산 국내 123개 마스크 제조업체 최대 총생산량은 하루 1000만개. 문제는 앞으로다. 업계 여러 관계자가 "주로 영세업체가 중국산 필터에 의존해왔는데, 대부분 회사가 '재고 제로(0)' 상태라 앞으로 휴·폐업이 잇따를 것"이라고 했다. 정부 '신종 코로나 관련 피해 사례 신고센터'에도 "중국산 원·부자재 조달이 어려워 생산을 못 한다"는 마스크 제조업체 신고가 이달 들어서만 30건 가까이 접수됐다. 그러자 관세청은 11일 "수입 신속통관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 물건을 안 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정부는 이달 들어 "마스크 생산·재고 모두 충분하다"는 입장을 잇달아 밝혀왔다. 국내 마스크 생산량과 재고에는 문제가 없고, 매점매석이나 해외 밀반출 등 유통 부분만 단속하면 마스크 수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최근엔 100만개를 보관 중이던 도매상 한 곳을 급습하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매업자 B씨는 "장당 1650원이던 매입 가격이 열흘 새 2400원까지 올랐는데도 우리 역시 공장에서 물건을 못 구한다"고 했다.

공장에서 이미 '입도선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3SM(쓰리에스엠)' 측은 최근 거래처 문의가 올 때마다 '재고가 없고, 생산 스케줄이 12월까지 잡혀 추가 발주를 받지 않는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씨앤투스성진도 "연말까지 생산되는 물건은 모두 임자가 정해졌다"고 했다. FTEnE(에프티이엔이) 등 다른 제조업체도 대부분 최소 두세 달치 예약이 꽉 찬 상태다.

누가 사가는 걸까. 여러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이달 초 현금 보따리를 든 중국인이 많이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들이 팔았다고 밝힌 곳은 없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바이어들의 5만원권 뭉치 '인증샷'이 여럿 올라왔다. 생산량 기준 국내 최상위권 마스크 제조업체 사장은 "여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이번 사태 이후 재고 포함, 약 4억장이 중국으로 빠져나간 걸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12일부터 전국 모든 마스크 생산공장에 매일 생산·판매 제품을 식약처에 신고하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판매처가 대부분 정해진 상황에서 뒤늦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수요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한 번에 수십, 수백장씩 사려는 소비자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1인당 판매량을 제한 중"이라고 했다. 12일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전국 100개 매장에 매주 10만개 정도가 입고되는데, 하루면 끝난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 관악구 한 편의점 직원은 "주 3회 입고되는데, 설 연휴 전까지 회당 총 800개까지 주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개밖에 안 들어오고 1시간 지나면 없다"고 했다. 기업들도 잇달아 직원용 마스크를 대규모로 매입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날 자사는 물론 하도급업체 직원까지 마스크 총 2만2000장씩을 매주 무료 제공한다고 밝혔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국장은 "메르스 때에 비해 국민 안전의식 또는 불안감이 훨씬 커진 탓에 가수요가 많이 생긴 것도 마스크 대란의 원인"이라고 했다.

☞MB(Melt Blown) 필터

폴리프로필렌을 섭씨 250℃ 이상에서 녹인 뒤 촘촘한 구멍에 통과시킨 극세(極細) 섬유를 압착해 만든 필터. 미세 먼지나 침방울 등 미세 입자를 정전기로 끌어당겨 잡는다. 보건용 마스크 핵심 소재다. 에어컨, 공기청정기에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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