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독재 수단은 퍼주기, 민주주의 죽이고 있다"

입력 2020.02.13 03:00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나라] [1] 폴란드 민주화 투사였던 바웬사 前대통령의 경고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가 포퓰리즘 설치는 더러운 시대로… 이게 내가 다시 투쟁 나선 이유"

‘헌법’ 새긴 셔츠 입고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포퓰리즘을 도구 삼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새 독재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그가 지난해 2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폴란드어로 ‘헌법(Konstytucja)’이 쓰인 셔츠를 입은 모습.
‘헌법’ 새긴 셔츠 입고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포퓰리즘을 도구 삼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새 독재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그가 지난해 2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폴란드어로 ‘헌법(Konstytucja)’이 쓰인 셔츠를 입은 모습. /EPA 연합뉴스
동유럽 민주화의 상징인 레흐 바웬사(77) 전 폴란드 대통령은 폴란드어로 '헌법(konstytucja)'이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새겨진 빨간 니트에 남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로서 공산당 독재에 맞서던 '민주화 투사'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상의에 새겨진 '헌법' 문구는 현 폴란드 정권의 사법 장악과 개악에 맞서 반드시 수호할 가치로 내세운 상징이다. 바웬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결기가 남아 있었다. 특유의 콧수염은 허옇게 셌지만 눈빛엔 힘이 있었다.

지난달 13일 폴란드 북부 도시 그단스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금은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켜야 할 때"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분열, 대립, 갈등, 불신이 심각한 가운데 사람들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더러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포퓰리즘을 도구 삼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새로운 독재에 맞서야 한다." 그는 "급격한 세계화와 빈부 격차에 따른 혼돈의 시대를 맞아 폴란드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포퓰리즘 세력이 변화를 가져오겠다며 등장했지만, 그들의 변화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 철저하게 잘못된 방향"이라고 했다.

그단스크에서 조선소 전기공이었던 바웬사는 1970~1980년대 폴란드 노동계를 이끌었다. 19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1990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돼 5년 임기를 마쳤다.

바웬사가 30년 만에 다시 민주주의 수호에 나선 건 폴란드 집권당 법과정의당(PiS) 때문이다. 동유럽에 포퓰리즘을 전파하는 진원지인 법과정의당은 백인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민족주의와 현금을 뿌리는 좌파 복지정책을 결합시킨 양면(兩面)의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한다. 2015년 총선 때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캠페인을 내세워 집권했고, 2019년 총선에선 아동수당 연금 등 대량의 현금을 살포한 것이 위력을 발휘하며 재집권했다. 권력을 잡은 법과정의당은 사법부와 미디어를 장악하며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의회가 판사의 임면(任免) 및 징계 권한을 법원으로부터 빼앗아 사실상 여당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영방송을 정권 홍보 채널로 적극 활용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바웬사는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방법은 투표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자유와 권리를 누리려고만 할 뿐, 선거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은 등한시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고 국경을 넘어 세계인들과 연대하며 포퓰리즘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법무장관이 검찰총장 겸임, 검찰도 장악 바르샤바=손진석 특파원
폴란드 집권당, 親與인사로 법관 바꾸고 공영방송 사장도 교체 바르샤바·그단스크=손진석 특파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