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금메달 아니어도 괜찮아

조선일보
  •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저자
입력 2020.02.13 03:00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저자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저자
필라테스를 2년 정도 했다고 말하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이 있다. 마르고 탄탄한 몸매를 증거로 기대하는 것이다. 스쿼시를 7년 한 친구에게는 수상 경력을, 복싱을 오래 한 친구에게는 대회 출전 여부를 묻는다. '그만큼' 했으니 당연히 '이 정도 경지'에는 이르렀겠거니 하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운동 능력이나 체력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오르는 과정은 즐겁다. 버겁던 동작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따라 할 때, 꼼짝도 하지 않던 무게를 쑥 들 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통증이 사라지고 아침에 몸이 가뿐할 때…, 갑자기 벅차오른다. 그러나 성과를 '검증'하려는 접근은 반갑지 않다. 등수에 민감한 엘리트 체육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쉬려고 떠난 여행조차 무언가 느끼고 배운 게 있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성과주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꼭 최고가 되거나 어떤 경지에 오를 필요는 없다. 정점보다 넓은 스펙트럼 속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운동은 금메달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빼어나게 잘하거나 누군가를 이기거나 어디 대회에 출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굳이?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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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즐거움은 성취와 향상만 있는 게 아니다. 산을 오를 때 정상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앞 풍경과 꽃과 풀과 흙과 나무 냄새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의 궤적은 퀘스트(과제)를 깨듯 쭉쭉 나아가는 전진형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어진 지점을 찍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반복형에 더 가깝다. 변화하는 몸은 '이미 깬 판'과 달리 '나'와 단절되거나 지나가지 않고, 매번 똑같은 위기나 다른 변수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니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느냐가 더 중요하겠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운동복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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