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혼탁한 세상에… 경허 스님의 한 줄기 맑은 필적

조선일보
입력 2020.02.13 03:00

송광사 성보박물관 특별展

'신령스러운 도량에 맑은 흥이 하도 많아/ 끝없는 유희가 언제나 펼쳐지며/ 할(喝)을 하는 토끼 뿔에 천둥소리 은은하니/ 수많은 어룡(魚龍)이 푸른 하늘 올라가네.'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1846~1912) 스님이 1900년 12월 전남 순천 송광사에 왔다. 큰스님을 많이 배출한 이 승보(僧寶) 사찰에서 그는 평소 흠모하던 보조국사의 감로탑과 국사전의 영정을 참배하며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 떠나면서 이 시를 지었다. 물고기가 용문을 뚫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듯, 신령한 승보 도량에서 수많은 선지식이 배출된 것을 찬탄하는 절창이다.

경허 스님의 친필 시를 새긴 ‘송광사 육감정에서’ 시판. 27×39.5㎝.
경허 스님의 친필 시를 새긴 ‘송광사 육감정에서’ 시판. 27×39.5㎝. /송광사 성보박물관

송광사 성보박물관(관장 고경 스님) 특별전 '송광사의 필적 기행'에 경허 스님의 친필 시를 새긴 '송광사 육감정에서' 시판(詩板)이 나왔다. 경허는 구한말 그의 일대기를 다룬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큰스님. 김태형 학예연구사는 "경허 스님의 친필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필적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며 "힘 있게 써 내려간 필적에서 스님의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전시 주인공은 송광사 경내에 걸려 있던 현판과 시판, 주련 등을 망라한 필적이다.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하는 성수전(聖壽殿)을 건립할 때 쓴 상량문 기판도 처음 공개했다. "성상(고종)께서 51세를 맞이한 경사에 마침내 대중이 삼축(三祝)하는 마음으로 저 화려한 건물을 짓고 성수라고 이름 지었다"는 사연이 담겼다.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낸 홍석주(1774~1842)가 송광사를 방문해 지은 기행문을 새긴 '연천옹유산록(淵泉翁遊山錄)' 기판, 1750년 처해 스님이 쓴 '침계루에서 짓다' 현판, 수행 공간에서 엄수해야 할 예절과 덕목 등을 담은 '칠전간당론(七殿看堂論)과 13가지 절목' 기판 등을 선보인다.

보물 제1043호 '송광사 16조사 진영' 중 보조국사 초상화, 보물 제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 등 사찰이 소장한 다른 유물도 볼 수 있다. 송광사 현판과 금석문 등을 상세히 소개한 책 '송광사의 필적 기행'도 발간됐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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