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영의 News English]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성공한 스타들

조선일보
  •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입력 2020.02.13 03:12 | 수정 2020.02.13 17:28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살인의 추억' 때까지 입에 풀칠하기에(keep the wolf from the door) 급급했다. 영화 '모텔 선인장'의 조감독(assistant director)으로 1년 10개월 일하고 받은 돈이 450만원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쌀을 갖다줄 정도였다.

성공한 사람들 중엔 시련과 좌절을 딛고(overcome ordeals and frustrations) 대반전을 이룬(turn the table) 경우가 적지 않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학과에 지원했다가 세 차례나 불합격했다. 하지만 1960년대 가장 젊은 감독으로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채용돼 수많은 작품을 성공시켰고, 1994년 해당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고(receive an honorary degree) 1996년엔 재단 이사로 추대됐다.

타고난 연설가(gifted speaker)로 손꼽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신학대학 1학년 때 연설 과목에서 C를 받았다. 그러나 절망하지(fall into despair) 않고 열심히 공부해(hit the books) 전 과목 A 졸업생 대표(straight-A valedictorian)가 됐다. 그는 일생 동안 2500여 회의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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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은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었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be sent back). 12차례나 거절을 당한(be turned down) 끝에 1997년에야 겨우 계약을 맺었는데, 대박을 터뜨렸다(hit the jackpot).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5세 때 학교를 자퇴하고(drop out) 스위스의 과학기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수학을 제외하곤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재수를 해(study for the next entrance exam) 이듬해 겨우 들어간 후에도 줄곧 고전했지만, 결국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 위업을 이뤄냈다(accomplish a feat).

실베스터 스탤론은 벼락 성공(overnight success)을 하기 전까지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be desperate for a gig) 실직 배우였다. 1500여 명의 신인 스카우트에게 외면당하고, 그가 쓴 30편의 시나리오는 모두 되돌아왔다. 그런데 3일 만에 쓴 80쪽짜리 '록키' 대본에 직접 주인공을 맡아 반전을 일궈내면서 1977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편집상을 거머쥐게 됐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4년 한 컨트리 뮤직 업체에 고용됐다가 "돌아가서 트럭 운전이나 다시 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낙담하지(be disheartened) 않고 경쟁 회사를 찾아가 인기를 구가하기(sing the joys of popularity) 시작했다.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고예산 영화(big-budget movie)가 흥행에 참패하자(tank at the box office)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방송에 전념해 토크쇼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런가 하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고교 때 대표팀에 끼지도(make the varsity team) 못했다. 2군 팀에서 뛰어야(play on the junior varsity) 했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blessing in disguise)이 됐다. 1군 대표팀 대기 선수로 허송세월하지 않고 2군에서 맹활약해 두각을 나타내는(take a very active part and cut a conspicuous figure) 기회가 됐고, 결국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최고 스타로 점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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